영빈관 신축 논란이 반 나절 만에 철회로 마무리됐다. 일단 재빨리 거둬들인 건 잘한 일이다. 하지만 해프닝으로 끝날 것 같지 않다. 두고 두고 공격받을 게 뻔하다. 그만큼 중요한 실책이었다.
영빈관 신축이 논란을 불러온 가장 큰 이유는 말을 너무 쉽게 뒤집었기 때문이다. 청와대 이전은 윤석열 대통령 공약의 대표격이다. “청와대를 국민에게 돌려주고 소통하는 용산 시대를 열겠다”는 취지는 신선했다. 많은 우려와 반대에도 결국 성사시킨 뚝심도 평가받을 만하다. 하지만 말을 너무 쉽게 했다. 당시 지적된 문제는 빠듯한 일정과 엄청난 비용이었다. 야당은 “1조원 이상이 들어갈 것”이라고 비난했고 당선인 시절의 윤 대통령 비서실에선 “500억원이면 충분하다”고 맞섰다. 아예 “청와대로 들어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국격에 맞는 국빈 행사를 어떻게 치를 것이냐는 지적엔 “기존 청와대 영빈관을 활용하거나 대체 장소를 물색하면 된다”고 했다. 실제로 중요한 국빈만찬이 신라호텔(취임 축하사절)과 국립중앙박물관(바이든 미 대통령)에서 치러졌다.
그런데 느닷없이 878억원이나 들여 영빈관을 새로 짓겠다니, 국민은 어안이 벙벙해진다. 안 그래도 대통령실 이전비용이 발표된 것보다 300억원 이상 더 들어간 게 드러나 눈총을 받는 상황이다.
더구나 아무 공론화 과정이나 설명도 없이 영빈관 신축을 은근슬쩍 추진하려 했다. 이번 예산은 대통령실도 아니고 기획재정부 국유재산관리기금 사업에 들어 있다. 주체가 누군지, 언제 어떻게 출발했는지 모든 게 불투명하다. 그런데도 대통령실은 “용산 시대에 걸맞은 영빈관의 필요성에 대해 많은 국민이 공감할 것”이라고 엉뚱한 해명을 했다.
하지만 용산 이전을 강조할 때는 아무 문제도 없을 것처럼 얘기하다가 불과 4개월 만에 말을 바꾸는데 고개를 끄덕일 국민은 없다. 해명은커녕 비난여론만 더욱 비등해진 이유다. 결국 윤 대통령은 “국격에 걸맞은 행사공간을 마련하려는 취지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으니 철회하라”고 지시했다. 당연한 일이다. 처음 청와대 이전 당시부터 “취지가 중요하니 앞으로 생길 문제는 중론을 모아 합리적으로 해결해 나가겠다”고 했으면 이처럼 심한 비난에 시달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말은 약속이다. 신중해야 한다. 정치에선 더욱 그렇다. 쉽게 해서도, 때에 따라 바꿔서도 안 된다. 번복이 불가피하면 실수든, 무지든, 거짓말이든 잘못을 인정하는 게 먼저다. 그래야 용서는 차치하고라도 이해와 공감을 얻을 수 있다.
영빈관 신축 논란이 ‘말조심 정치’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