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콘텐츠가 또 하나의 신기원을 열었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황동혁 감독과 배우 이정재가 74회 미국 에미상 시상식에서 감독상과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영어권 드라마의 독무대였던 에미상에서 비(非)영어 드라마가 주요 부문에 오른 것도, 한국인이 수상한 것도 모두 최초다. 앞서 예술·기술 부문에서 받은 게스트 여배우상, 스턴트 퍼포먼스상, 시각효과상, 프로덕션디자인상까지 합치면 6관왕의 쾌거다. 영화(아카데미 작품상)와 대중음악(빌보드 싱글차트 1위)에 이어 마침내 K-드라마가 마지막 장벽(에미상)을 무너뜨린 것이다.
드라마 같은 시리즈물은 주로 집에서 TV나 인터넷을 통해 시청하기 때문에 국적과 언어의 장벽이 높다. ‘TV 아카데미’라고도 불리는 에미상이 74년이나 비영어권 드라마에 철옹성이 된 이유다. ‘오징어 게임’은 바로 이 장벽을 넘은 것이다. 적자생존, 계급사회, 승자독식 등 현대사회의 어두운 그늘을 한국 유소년 놀이문화와 접목시킨 창의성이 전 세계인의 감성을 휘어잡았다. 세계적 명장인 스티븐 스필버그가 황 감독에게 “당신의 뇌를 훔치고 싶다”고 말한 데서 K-드라마의 독창성과 탁월성을 알 수 있다.
‘오징어 게임’의 에미상 입성은 제작비를 댄 넷플릭스와의 협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시대‘로 들어오면서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플랫폼이 K-드라마를 세계에 알리는 전초기지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오징어 게임’은 지난해 9월 넷플릭스를 통해 190여개국에 동시 유통된 덕분에 4주간 16억5000만시간의 시청시간을 기록하며 세계 1위에 등극했다. 봉준호 감독이 언급한 ‘1인치의 장벽’이 넷플릭스에 의해 허물어졌고 에미상이 비영어권 드라마에 곁을 내줄 수밖에 없게 됐다. 싸이의 ‘강남스타일’, BTS의 음원들이 유튜브, 트위터, 페이스북 같은 소셜미디어에 힘입은 것처럼 K-드라마는 OTT라는 날개를 달고 세계로 비상했다.
이제 중요한 건 “오징어 게임이 에미상을 받는 마지막 비영어권 시리즈가 아니길 바란다”는 황 감독의 수상 소감처럼 K-드라마가 세계인의 환호를 이어갈 시스템을 정비하는 일이다. 저작권 문제로 창작자들이 오징어 게임 같은 엄청난 성과를 내도 그만한 부가 이익을 얻지 못하는 구조적인 문제를 풀 해법부터 찾아야 한다. 실제로 넷플릭스는 오징어 게임으로 1조원 가까운 수익을 냈지만 지식재산권(IP)이 없는 한국의 제작사는 손에 쥔 게 많지 않다.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작품들이 우리 OTT를 통해 글로벌 시장으로 나갈 수 있도록 자체 생태계를 구축하는 노력도 병행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