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용 경희대 교수 |
어떤 중년의 남자가 식당에서 일하는 젊은 여성을 ‘아가씨’라고 불렀다가 그 여성이 화를 내며 아가씨라고 부르지 말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기사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경우에 기사가 되었다고 하고, 기삿거리라는 말도 씁니다. 예전 같으면 이런 상황은 기삿거리가 아니라 농담거리였을 겁니다. 젊고 결혼을 안 한 것처럼 보이는 여성을 아가씨라고 해야지 뭐라고 부르냐는 말이 금방 나올 겁니다.
원래 아가씨의 의미는 ‘시집갈 나이의 여자를 이르거나 부르는 말’입니다. 결혼 여부로 여자를 구분하였다는 점에서는 생각할 여지가 있겠습니다. 영어에서도 미스와 미세스의 구별은 민감한 문제입니다. 한편 종종 상대가 아주머니처럼 보여도 일부러 아가씨라고 불렀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아주머니에게 아가씨라고 부르는 것은 젊어 보인다는 칭찬이었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가씨라는 말은 여러 점에서 생각할 부분이 있습니다. 우선 아가씨라는 말은 호칭과 지칭이 전혀 다를 수 있습니다. 부를 때와 가리킬 때의 느낌이 다를 수 있다는 말입니다. 아가씨라는 말이 기분 나빴다면 그것은 지칭에서 사용되고 있는 술집 아가씨 등에서 생긴 선입관 때문일 수 있습니다. 아가씨가 있는 술집이라고 떡하니 붙어있는 간판을 보게 되니 아가씨라는 말이 기분 나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런 경우에도 아가씨는 호칭으로는 쓰이지 않습니다. 지칭에서만 ‘아가씨’라는 표현은 부정적인 의미를 갖습니다. 호칭과 지칭을 구별하여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가씨를 호칭으로 쓰는 경우는 주로 높임에 해당하는 경우입니다. 친족 관계에서는 남편의 여동생을 아가씨라고 부릅니다. 즉 남편의 여동생을 높여서 부른 겁니다. 아내의 여동생은 처제라고 하여 일반적으로 하대를 하는 것에 비해 남편의 여동생만 왜 아가씨라고 부르면서 존대하느냐고 차별의 주장이 나오는 대목입니다.
우리말에서는 현재 여성과 관련된 호칭이나 지칭에 차별의 흔적인 남아 있습니다. 아버지 쪽 남자 형제는 큰아버지, 작은 아버지 구별이 있지만 어머니 쪽 남자 형제는 그냥 외삼촌입니다. 아버지 쪽이라도 여자 형제는 그냥 고모지요. 외삼촌의 부인을 외숙모라고 부르는 것은 참 이상한 호칭이지만 고쳐지지는 않습니다.
예전에 아가씨는 ‘주로 양반집 딸을 높여 이르거나 부르는 말’이었습니다. 아가씨라는 말 대신에 아기씨라는 말을 쓰기도 하지요. 아가, 아기의 의미에서 볼 때 보호의 대상으로 생각하였던 것 같습니다. 아기는 주로 막내라는 의미도 있었습니다. 아기 아들이나 아기 딸은 ‘막내’를 의미하였습니다. 한편 아가나 아기는 며느리에 대한 호칭이나 지칭으로도 쓰였습니다. 지금도 아가, 새아가라는 말을 들을 수 있습니다. 아가씨는 주로 양반집 딸을 대상으로 불렀다는 점에서 분명 듣기 좋은 말이었을 겁니다.
세상이 참 빨리 변합니다. 우리말에서 변화의 속도가 매우 빠른 부분이 지칭과 호칭 같습니다. 지금 우리는 불과 한 세대 전과 전혀 다른 호칭과 지칭을 사용합니다. 언니, 이모, 아줌마 등은 예전의 느낌과 전혀 다릅니다. 사회적 장면에서 ‘언니’는 예전의 언니가 아닙니다. ‘아줌마’도 함부로 쓰면 안 됩니다. 아주머니 대신 손님이라는 말을 써야 하고, 손님 대신 고객님을 씁니다. 사람 이름 뒤에 ‘-씨’를 붙이면 큰일 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나마 성 뒤에 씨를 붙이면 문제가 심각해집니다. ‘-군’과 ‘-양’도 마찬가지입니다.
총각이나 아가씨도 예전의 느낌이 아닙니다. 사람마다, 세대마다 느낌이 달라졌습니다. 물론 부르는 사람을 보면서 이해할 필요도 있고, 듣는 사람을 보며 조심할 필요도 있습니다. 저도 아가씨라고 부른 게 왜 문제였을까 이해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기분 나빠하는 사람이 있다면 조심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말합니다. 갑자기 총각 소리를 듣던 옛날이 그립네요.
조현용 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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