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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포럼] 조합 방식 개발사업의 어려움

20평 초반대 아파트를 분양받으려고 지역주택조합에 가입한 A씨. 하지만 사업 추진 과정에서 20평대는 사라지고 30평 이상만 분양받을 수 있게 된 데다 분담금도 2억5000만원에서 5억원으로 두 배가 훌쩍 뛰어버렸다. A씨는 중대한 사정 변경이 있으므로 조합원가입계약을 해제하겠다고 소송을 제기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서울고등법원은 A씨의 손을 들어줬다. 예측하기 힘들 정도로 사정이 중대하게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조합가입계약의 내용과 다르게 조합원으로서의 권리·의무가 변경될 수 있음을 전제로 조합가입계약을 체결한 경우 그러한 권리·의무의 변경이 당사자가 예측 가능한 범위를 초과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조합가입계약을 해제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바꿔 말하면 지역주택조합을 가입한 후 애초 원했던 평형도 사라지고 분담금이 2배 올라도 원칙적으로 조합에서 탈퇴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조합원가입계약을 일반적인 분양계약으로 본다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판단이다. 하지만 조합원가입계약은 주택사업을 시행하기 위해 단체를 구성하는 계약으로서 조합원은 수분양자가 아니라 사업자이므로 법원은 예측하기 힘든 사정 변경의 사유를 매우 좁게 판단한 것이다. 주택조합사업이 성공적으로 시행된다면 일반아파트보다 저렴하게 아파트를 취득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사업이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아서 발생하는 위험은 고스란히 사업 주체인 조합원 몫이 된다. 지역주택조합과 조합원의 법률관계는 개별적인 계약법(契約法)보다는 단체법(團體法) 중심으로 규율되는 관계인 것이다.

재건축 역시 계약법에서 단체법 중심으로 법리가 발전한 대표적인 사업이다. 과거 집합건물법에 따라 재건축을 하기 위해서는 구분소유자 80% 이상의 동의가 필요했다. 재건축 결의 시에는 신축 건축물의 개요, 비용분담액 등을 제시해야 하는데 법원은 사업 진행 과정에서 재건축 결의 당시와 비교해 비용분담액 등이 변경되면 재건축결의를 다시 얻어야 한다고 봤다. 그리고 이러한 동의를 다시 얻지 못한다면 조합설립인가 자체가 무효라고 판단했다. 이후 2009년 대법원이 조합설립인가에 관한 다툼은 민사소송이 아니라 행정소송으로 다투어야 한다고 판례를 변경한 이후 민사법이 아닌 행정법 원리에 입각해 여러 분쟁에 대한 판단이 내려지면서 행정법 중심으로 법률관계가 재편되어 왔다.

계약법 중심에서 단체법 중심으로 법률관계가 규율될 때 생기는 가장 큰 차이는 당사자의 개별적인 의사나 사정은 원칙적으로 법률관계에 영향을 줄 수 없고 단체의 의사를 결정하는 총회 및 총회의 의사를 집행하는 대표기관의 역할이 강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조합총회가 조합원 전체의 이익에 부합하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도록 합리적으로 운영돼야 하고, 대표기관 역시 조합원의 이익을 위해 최선의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전문성을 갖춰야 마땅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러하지 못한 것 같다. 국내 최대 규모 재건축단지의 공사가 중단된 지도 벌써 몇 달째다. 전 세계적으로 수백, 수천명이 넘는 조합원이 단체를 구성해 많게는 수천억, 수조원이 넘는 규모의 사업을 진행하는 사례를 찾아볼 수 없다. 일반 사기업도 이 정도 규모의 사업을 시행하려면 높은 전문성과 책임의식 없이는 불가능한데 다수 조합원과 관련 업체의 첨예한 이해관계를 일반적인 조합 집행부가 감당해내기는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다. 요즘 들어 주목받고 있는 신탁 방식 정비사업의 부상은 조합 주도의 사업이 난관에 봉착하고 있는 최근 현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향후 조합 방식의 사업은 전문성을 확보한 신탁사 등이 주도하면서 조합원들은 신탁사 등과 체결한 사업시행계약을 통해 업무를 견제하고 책임을 묻는 쪽으로 진행되는 사업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사업을 시행 또는 대행하는 주체의 책임을 강화하는 조치는 물론 필수적이다.

정원 법무법인 지평 건설부동산그룹장

s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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