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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민연금 빗나간 ‘몰빵’ 투자…해외투자는 시장도 못 이겨 [홍길용의 화식열전]
삼성전자 등 초과비중 대형주
시장대비 부진 수익률 치명상
해외선 비교지표 하회 계속돼
변동성에 노출…고갈 당길 수

국민연금이 사상 처음으로 기금이 감소하는 ‘굴욕’을 맛보게 됐다. 올 상반기까지 연금보험료 등으로 2조원 이상이 신규 유입되며 기금 적립금은 늘어났지만 투자 부문에서 대규모 손실이 발생했다. 상반기 말 기금운용액은 881조원으로, 지난해 말 948조원보다 67조원 넘게 줄었다. 하반기 증시가 소폭 반등했지만 그 폭이 미미해 상반기 손실을 의미 있게 만회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국민연금 출범 이래 처음으로 기금운용액이 줄어드는 해로 기록될 가능성이 커졌다. 주식 중심으로 엄청난 규모로 불어나 변동성에 더 취약해진 국민연금의 조기 고갈을 막기 위해서는 운용정책의 쇄신이 필요해 보인다.

올 상반기 국민연금기금이 가장 큰 손실을 본 곳은 국내주식이다. 비교지표(benchmark)인 코스피(배당 포함)는 0.68%포인트 이겼지만 그래도 무려 19.6%의 손실률이다. 지난해에도 벤치마크 초과 수익률은 0.06%포인트에 그쳤다. 국민연금기금이 대부분의 국내 대기업 대주주이고, 가장 많은 정보를 얻는 점을 고려하면 ‘잘했다’고 평가하기는 어려운 수준이다. 시원찮은 성적표의 이유는 빗나간 쏠림이다.

2020년 말 국민연금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네이버, LG화학, 삼성SDI, 현대차, 현대모비스 등의 비중을 시장보다 높였다. 하지만 가장 높은 5%포인트대 초과 비중을 두었던 삼성전자는 2021년 3% 넘게 하락했다. 시장 비중을 유지했던 카카오는 44% 가까이 급등했다.

2021년 말에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네이버, 삼성SDI, 삼성바이오로직스, 현대차, 카카오, 기아 등에 초과 비중을 유지했다. 하지만 올 상반기 삼성바이오와 현대차, 기아차를 제외한 대형주 대부분의 주가하락폭이 코스피 평균 낙폭보다 깊다. 높은 베팅을 한 종목에서 큰 손실을 본 셈이다.

국민연금은 해외주식에서는 지난해 이어 올해에도 벤치마크에도 못 미치는 저조한 성적을 거뒀다. 환율 덕분에 원화 기준 손실률은 12.6%이지만 달러 기준으로는 19.84%에 달한다. 해외주식은 국민연금 포트폴리오 가운데 국내채권 다음으로 높은 26.7%의 비중을 차지한다. 내년에는 30%로, 2027년에는 40%까지 비중을 높이면 최대 자산이 된다. 그런데 지금처럼 계속 시장 대비 저조한 성적을 낸다면 국민 노후자산이 치명상을 입을 수도 있다. 올해 수익률 부진은 지난해 비중을 늘렸던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알파벳, 앤비디아 등의 주가가 급락한 탓으로 보인다. 특히 공격적으로 지분율을 늘린 테슬라는 올해 주가가 폭락했다. 지난해 말 기준 국민연금이 1조원 이상 보유한 해외 종목은 35개로, 시가는 70조원이 넘는다. 국민연금 보유 국내주식의 절반에 해당한다.

구조적 인플레이션으로 상당 기간 통화 긴축 상황이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기금운용액 880조원 가운데 40% 이상이 증시변동성에 노출돼 있다. 이 비중은 5년 내 55%까지 높아지게 된다. 연금의 지급 여력을 높이기 위해 그동안 주식 비중을 높여왔고, 상당한 성과도 냈지만 앞으로도 계속 공격적인 운용 전략을 가져갈지에 대해서는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해 보인다. 적립식 투자는 평균 매수 단가 하향으로 비교적 효율적이지만 이는 시장이 우상향한다는 가정에서만 성립한다. 또 적립식 투자라도 시간이 지나 자산이 쌓이게 되면 거치식과 같은 시장 위험에 노출된다.

투자에서 기대수익(return)은 위험(risk)과 비례한다. 노후자금은 나이가 들수록, 운용자산 규모가 커질수록 위험자산 비중을 줄이는 게 정석이다. 퇴직연금은 개인별 자산이다. 수익과 손실이 모두 개인 단위로 한정된다. 공적연금은 집단으로 운용된다. 공격적으로 주식 비중을 높이다 실패하면 국민 전체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ky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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