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인플레이션 감축법’의 일환으로 자국에서 조립한 전기차에 대해서만 보조금을 지원한다는 법을 시행하기로 하면서 우리 정부의 움직임이 바빠졌다. 한국산 전기차 수출에 당장 타격을 입게 되면서 안덕근 신임 통상교섭본부장이 다음주 말 워싱턴DC를 방문해 미 상무부와 무역대표부 등을 찾아 직접 설득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현대차그룹 정의선 회장도 24일 미국으로 출국해 각계 채널을 동원할 참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경제 안보를 화두로 한미 간 협력이 강화돼온 만큼 미국과 전기차 보조금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 지 우리 정부의 통상 역량이 시험대에 올랐다.
모두가 아는대로 전기차는 보조금에 따라 판도가 결정된다. 최대 7500달러의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미국 소비자가 이를 뒤로하고 현대차와 기아를 선택할리 만무하다. 조 바이든 대통령의 지난 5월 방한 때 현대차 정 회장이 100억달러 넘는 투자를 약속했지만 현지 공장이 가동할 때까지 최소 3년간 한국 전기차는 발목이 묶인 셈이다. 우리도 똑같은 방식으로 국내 기업에 보조금 지급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시장 규모를 생각하면 별무효과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오는 11월 미국의 중간선거를 겨냥해 바이든 행정부가 정치적으로 거둔 승리인 만큼 법 자체를 고칠 가능성은 매우 작다. 때문에 미 재무부가 연말까지 수립할 예정인 시행령을 촘촘히 조율하는 방안이 현실적인 대안이다. 고심 중인 정부는 WTO(세계무역기구) 제소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실효성이 떨어진다. 트럼프 전 대통령 때 무력화된 WTO의 대법원인 상소기구가 3년째 기능이 정지돼 분쟁 해결까지 몇 년이 걸릴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보다는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절차를 이용하는 게 더 낫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미국산과 외국산 제품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FTA 협정 위반이라는 점을 부각할 수 있다. 분쟁 해결 과정에 미국 배심원 외에 우리나라와 제3국 배심원이 판결에 참여하는 점도 긍정적 요인이다. 판결을 이행하지 않는다면 미국이 ‘한국이 입은 피해’를 배상하도록 하는 절차도 같이 마련돼 있다. 한편으로는 이번 조치로 같이 타격을 입게 된 독일과 일본 등 다른 국가와 공동 대응해 국제기구를 통해 문제를 제기하는 방안도 활용해 봄직하다.
자국 우선주의식 보조금 지급 방식이 주요국 사이에서 확산될 경우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에게는 재앙적 타격이 될 수 있다. 단순히 이번 사안 하나가 문제가 아니고 앞으로의 통상질서 혹은 무역 환경을 생각해서라도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