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아산병원에서 간호사가 근무 도중 뇌출혈로 쓰러졌는데도 외과 수술을 집도할 당직 의사가 없어 다른 병원으로 옮겼다가 사망한 사건을 두고 거센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달 24일 새벽 서울아산병원의 30대 간호사는 근무 중에 뇌출혈로 쓰러져 응급실을 찾았지만 당장 필요한 수술을 할 전문의가 없었다. 아산병원에 뇌질환을 담당하는 신경외과 전문의는 3명인데 이 가운데 ‘외과 수술’이 가능한 2명이 학회 참석이나 휴가 등으로 자리를 비웠기 때문이다. 결국 이 간호사는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지난달 30일 숨졌다.
국내 최고의 의료진과 시설을 보유한 상급 종합병원조차 원내 직원의 응급수술 골든타임을 놓쳐 사망에 이르게 한 것은 충격적인 일이다. 아산병원의 응급 대처와 뇌수술이 가능한 의사 2명이 모두 자리를 비운 게 적절했는지는 보건복지부 조사로 밝혀지겠지만 문제는 빅 5 병원마저 이런 지경이라면 중소 병원과 지방 병원 사정은 더 열악할 것이라는 점이다. 제때 치료를 못 받아 사망하는 안타까운 일이 우리 주변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날 개연성이 크다. 실제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급성기 뇌졸중 적정성 평가자료에 따르면 뇌경색 환자의 15~40%는 첫 번째 방문한 병원에서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골든타임이 지난 후 다른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시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사건의 근저에는 의료인력 부족, 3D 진료과 기피, 중증도에 비해 턱없이 낮은 의료수가 등 해묵은 과제들이 깔려 있다. 고령화로 뇌출혈·뇌경색 관련 수술 수요가 급증하는데도 40대 이상의 실력 있는 뇌혈관 외과의사는 거의 고갈 상태라는 게 현장의 하소연이다. 신경외과 등 고난도 중증 환자 대상 전공을 하고도 전공을 포기한 채 피부과·성형외과 등을 진료과목으로 개원하는 의사들이 많다. 고난도의 뇌동맥류 수술 수가가 쌍꺼풀과 비슷한 구조다 보니 일어나는 일이다. 보건의료노조와 경실련 등 시민단체에서는 17년째 제자리걸음인 의대 정원을 확대하고, 공공의대를 신설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병원의사단체는 그러나 왜곡된 의료수가 개편이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모두 일장일단이 있는 주장들이다. 정부는 각계의 의견을 종합하고 검증해 제도 개선에 적극 나서야 한다.
고질적 3D 진료과 기피 문제는 의사 개개인의 양심에 호소할 문제가 아니다. 의대 입학 단계부터 특정 과로 길을 좁혀 선발하고 해외처럼 뇌나 심장 분야 전문의들에게 훨씬 큰 혜택이 돌아가도록 정비할 필요가 있다. ‘탈모 건보 적용’과 같은 포퓰리즘성 정책 대신 의료 사각지대를 없애는 데에 건보 재정을 투입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