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에 적용되는 최저임금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된 가운데 노동계가 최저임금 수준을 올해(시급 9160원)보다 18.9% 오른 1만890원을 제시했다. 경영계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에 폐업하라는 것과 같다”며 반발했다.
올해 쟁점 중 하나였던 ‘업종별 차등 적용’ 여부가 부결로 결론 난 만큼 최저임금 수준 심의를 둔 ‘기싸움’이 심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급 1만890원을 월급 기준(209시간 근로 기준)으로 환산하면 227만6010원이다. 이는 올해 191만4440원보다 36만1570원 늘어난 액수다.
근로자로서는 최저임금 인상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문제는 사용자, 즉 업주가 이를 감당할 수 있느냐다. 최저임금의 고율 인상이 누적돼 최저임금 수준이 높아지면 노동시장의 수용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법정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 근로자가 많아질 수 있다는 의미다. 실제 지난해 최저임금을 받지 못한 근로자 수는 2019년 이후 역대 두 번째로 많은 321만5000명에 달했다. 특히 최저임금 미만율은 지급능력을 고려하지 않은 최저임금의 일률적인 인상으로 농림어업과 숙박음식업 등 일부 업종에서 높게 나타났다. 소규모 사업장의 고민은 더 컸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5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 379만5000명 중 33.6%인 127만7000명이 최저임금 미만 근로자로 나타났다.
경영계 역시 현재 한국 경제가 직면한 위기 상황을 강조하고 있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이라는 ‘삼중고’에 이어 생산·소비·투자가 모두 감소하는 ‘트리플 악재’가 예상된다는 점에서 고용시장의 한파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다. 경총과 중기중앙회가 최근 진행한 ‘중소기업 의견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절반 이상(59.5%)이 내년도 최저임금을 동결하거나 인하해야 한다고 답했다. 47%는 현재 경영 상황이 코로나19 이전보다 악화됐다고 진단했다. 향후 경영·고용여건이 호전될 것으로 예상한 중소기업은 12.3%에 불과했다.
최저임금이 적정 수준의 상한선인 중위임금 대비 60%를 초과했다는 점도 ‘과속 인상’을 경계해야 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중위임금 대비 최저임금은 미국이 27.3%, 일본이 46.5%다. 경쟁국들보다 한국의 최저임금이 월등히 높다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소득 분배를 목적으로 최저임금을 인상하려는 것도 과거 사례에 비추어 보면 무의미하다. 실제로 최저임금이 29.1% 대폭 인상된 2018~2019년에도 지니계수와 상대적 빈곤율 주요 소득분배지표는 개선되지 않았다.
지난 2018년(16.4%), 2019년(10.9%)의 인상률이 최저임금 1만원 달성을 위한 정치적인 결정이라는 지적은 여전하다. 현재와 앞으로의 경제여건도 코로나19 이전과 다르다. 최저임금 수준의 적정성을 다른 나라와 비교하고, 경제적 여건을 고려해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최저임금위원회는 자율성과 독립성 속에서 그간 쌓은 전문성과 규정에 따라 성장률과 소득분배지수, 업종별 상황을 고려해 적정 최저임금 수준을 도출해야 한다. 세계적인 경기침체의 공포 속에서 최저임금을 올리기보다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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