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조폐공사 임직원은 디지털 전환을 위해 신발끈을 조여매고 있다. 디지털 전환을 완수하지 못하면 미래가 없다는 위기 의식이 조직 곳곳에 녹아 있다.
조폐공사는 지난해 창립 70년을 맞아 ‘가치를 만들고(Creating Value), 신뢰를 이어준다(Connecting Trust)’는 미션을 바탕으로 ‘초연결 시대 국민 신뢰 플랫폼’이 되자는 비전을 수립한 바 있다. 디지털 전환은 이 비전을 달성하기 위한 것으로, 제조업 기반의 조폐공사 임직원으로서는 새로운 도전이다.
지난해 ICT 전담조직을 확대 개편하고 IT회사 출신 전담임원을 영입하는 등 조직을 정비한 데 이어 올 들어서는 블록체인 전문인력을 채용하는 등 디지털 기술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현금 없는 사회의 도래로 화폐 발행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고 설상가상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여권 발급이 줄어들고 있다.
이런 위기 돌파를 위해 디지털 전환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화폐와 여권 제조를 통해 쌓은 가치 저장, 신분 인증, 위·변조 방지 노하우를 디지털 부문으로 확장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ICT사업인 지역화폐 플랫폼 ‘착(Chak)’은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 위·변조 우려를 말끔히 해소해 지방자치단체에 행정 편의를 제공하고 있고, 오는 7월부터 본격 서비스에 들어가는 휴대전화 속 ‘모바일 운전면허증’은 국민의 편의성을 크게 향상시킬 것이다.
디지털 전환에 한창 바쁜 임원들과 함께 지난달 경북 안동 도산서원을 찾았다. 숨 가쁘게 달려왔던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보고 퇴계 이황의 가르침에서 팁을 얻고 싶어서였다. 김병일 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이 소개한 퇴계 이황의 교육방법은 ‘博學(박학·넓게 배우고), 審問(심문·의문은 질의), 愼思(신사·신중히 생각), 明辯(명변·명확하게 판단), 篤行(독행·독실하게 실천)’ 등 5단계였다.
디지털 전환을 위해서는 ICT에 대해 넓게 알아야 하고, 의문이 나는 것은 질문하고, 투자를 결정할 때는 신중히 생각해서 명확하게 판단하고, 시작한 프로젝트는 끈기 있게 비즈니스모델로 승화시켜야 조폐공사의 미래를 보장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산서원의 ‘무불경(毋不敬)’ 글귀는 업무를 추진하면서 몰입하고 집중하는 敬(경)의 자세로 일하는지 다시 한 번 옷매무시를 여미게 했다. 풍기군수 시절 소수서원 사액을 건의하고 역동서원 등 10개의 서원 창설을 주도해 세상을 바꾸자고 했던 퇴계 이황의 리더십은 조폐공사의 핵심 가치와도 맞닿아 있었다. 자신을 낮추는 겸손, 타인의 생각을 수용하고 포용하는 소통과 개방성, 다른 철학을 받아들여 자신의 철학을 발전시키는 융합과 창의성이 조폐공사의 조직문화에도 녹아들기를 기원했다. 옆집 밤나무 가지에서 떨어진 밤을 주인에게 되돌려준 일화를 통해 공직자로 가져야 할 청렴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했다.
조폐공사가 제조하는 1000원권 지폐 앞면에는 퇴계 이황 선생의 초상화가, 뒷면에는 겸재 정선이 퇴계 생존 시 도산서원을 중심으로 주변 산수를 그린 ‘溪上靜居圖(계상정거도)’가 인쇄돼 있다. 1000원권을 볼 때마다 떠오르는 선생의 가르침을 본받아 ICT 전환을 성공적으로 완수해서 조폐공사가 국민의 든든한 디지털 신뢰 플랫폼이 될 날을 그려본다.
반장식 한국조폐공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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