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이 끝난 뒤 삼성·SK·현대차 등을 포함한 국내 주요 10대 그룹은 윤석열 정부 임기 내 총 1000조원이 넘는 대규모 투자를 발표했다. 이와 함께 내놓은 5년간 총 40만여명에 이르는 신규 채용목표도 제시했다. 계속되는 원자잿값 인상과 공급난 여파에도 기업들은 국내 경제성장 및 고용확대를 위해 적잖은 부담을 안고도 투자계획을 내놓은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기업경영을 더 자유롭게 할 수 있게 규제를 대거 개선하고 “일자리 창출 기업은 업어주겠다”고 적극 나서자 이에 대한 화답으로 신규 채용계획이 쏟아진 측면도 있다.
기업들은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체계적인 인사 시스템으로 인력을 뽑기에 기업이 직접 창출하는 일자리는 그만큼 양질이 보장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좋은 일자리를 기업들의 투자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통계청 발표 ‘5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취업자 수는 2848만5000명으로, 1년 전보다 93만5000명 늘었다. 이는 5월 기준으로 2000년(103만4000명) 이후 22년 만의 최대 증가다. 이 같은 기록 뒤에는 연령별로 60세 이상에서 가장 많은 45만9000명이 증가해 전체 취업자 증가분 절반가량이 60세 이상이라는 현실이 숨어 있다. 업종별로는 보건·사회복지 서비스업(17만8000명), 공공행정(9만9000명) 순으로, 정부가 세금을 투입한 직접 일자리사업과 관련돼 있다.
기업들이 마른 수건을 비틀어 신규 채용 규모를 짜내고, 정부가 국민혈세를 투입해 당장의 취업자 수만 늘리는 것은 근본적 해결책이 아니다. 이런 상황이 되풀이되는 가장 큰 이유는 국내 교육과 일자리가 긴밀하게 연결되지 못하는 ‘미스매치’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발표에 따르면 직업학교, 전문대학, 대학 등의 졸업자들이 해당 교육과 관련된 직업을 갖고 있는 비율에서 한국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0개국 중 꼴찌인 것으로 조사됐다. 당장의 일자리 창출에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고 있지만 인적 자원 경쟁력 향상을 위해 교육 단계부터 혁신적인 투자가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유럽경영대학원(INSEAD)의 ‘2021 세계 인적 자원 경쟁력지수’를 분석한 결과, 이수한 교육으로 직업까지 연결된 근로자의 비율 항목에서 한국은 57.96%를 기록해 OECD 30개국 중 30위였다. 비싼 학비로 교육을 마쳐도 이와 관련된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에 ‘고용 유지’에 급급해 눈앞의 일자리 확보에만 예산을 투입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일자리로 연결될 수 있는 교육투자 강화가 주문되고 있다. 한국의 고등교육 1인당 정부 지출 규모는 5773달러로, OECD 37개국 가운데 31위에 불과하다. 또 GDP 대비 ‘직업훈련 지출’ 비중도 한국은 0.06으로, OECD 평균(0.11)의 절반 수준에 그친다. 이처럼 고질적인 문제를 고치지 못한다면 우리는 번번이 기업의 고육책에 기댈 수밖에 없다. 기업은 무조건 누른다고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자판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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