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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프칼럼] 신뢰와 공동체

요즘 눈만 뜨면 밤새 일어난 사건 사고에 멀쩡한 정신이 혼미해진다. 이제 웬만한 사건으로는 놀랄 일이 많지 않다. 다이내믹, 다사다난이라는 말로도 부족하다.

며칠 전에는 법정에서 패소한 당사자가 상대편 변호사 사무실에 불을 지른 사건이 발생했다. 본인이 선임한 변호사가 아닌 상대편 변호사를 상대로 한 방화 사건이었다. 어찌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말인가. 법 감정을 범죄라는 것으로 표출한 극도의 사례다.

법치주의의 무너짐으로 사건을 단정 짓기 전에 이 모든 것을 ‘신뢰의 무너짐’라는 것으로 이야기하고자 한다. 단순하지는 않다. 하지만 나에 대한 신뢰, 상대방에 대한 신뢰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우리 사회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기에 벌어진 일인 것만은 확실하다.

사건에서 패소함으로 인해 앞으로 나의 인생이 회생할 여지가 없다고 확신하였기에 ‘무고한 상대방도 죽이고 나도 죽자’라는 심정을 표출한 것은 곧 신뢰의 무너짐을 보여준다. 그리고 내 인생의 실패를 원인으로 나와 무관한 모든 사람의 생명을 경시하였다는 것은 곧 내가 살고 있는 사회를 부정한 것과 맥락이 맞닿아 있다. 그 누구도 나의 삶을 도와줄 여지가 없다고 판단한 것은 곧 상대방과 나의 공동체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된다.

이 사건을 우리가 좀 더 복잡한 심경으로 바라봐야 할 것은 단순히 ‘법치주의에 대한 도전’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간 종종 벌어졌던 ‘내 사건을 패소하게 만든 변호사’에 대한 적개심, ‘나에게 불리한 판결을 내린 판사’에 대한 분노에서 나아가 ‘나를 지게 만든 상대방 변호사’에 대한 극도의 분노를 표출하였다는 것이다.

결국 나의 삶을 망친 원인의 주범을 나의 과오도, 국가의 시스템도 아닌 나와 대척점에 있는 상대방에게서 찾고 있다. 잘되면 내 덕, 잘못되는 남 탓을 하는 결정적인 모습이다. 물론 누구나 억울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는 결국 무고한 남을 탓하였고, 사회를 탓하였다. 무엇보다도 ‘내가 앞으로 이 사회에서 다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라는 확신을 찾을 수 없었다. 전반적인 사회에 대한 불신과 절망이 삶을 포기하게 만든 결정적인 원인이 된 것이다.

우리나라는 여러 가지 지표를 통해 볼 때 명실상부한 선진국이다.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GDP(국내총생산) 기준 10위권 국가이다. 모두가 서로 도우며 함께 열심히 산 결과다. 하지만 이러한 사건이 하나 둘 반복될수록 10위권이라는 것은 명목에 불과한 의미 없는 숫자라는 것을 깨닫는다. 선진국이란 무엇이고, 경제대국이라는 건 어떤 의미이며 우리가 사는 삶과는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 것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나의 삶과 너의 삶은 대척점에 있지 않고 분리되지 않는다. 내가 행동하는 여러 지점이, 상대방이 옮기는 발걸음 하나하나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 공동체 속의 내 모습이 중요한 이유이다. 숫자로 설명할 수 없다.

사회에 대한 불신은 나의 삶을 얼마나 망가뜨리게 되는지, 서로 간의 불신이 공동체를 어떻게 무너뜨리지 우리는 목격하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요즘은 나에 대한 확신에서 나아가 ‘너에 대한 믿음, 서로 간의 신뢰, 사회를 바라보는 희망적인 시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나 혼자 잘사는 것은 의미가 없다. 경제적으로, 기술적으로 진보할수록 우리가 공동체의 의미를 놓쳐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이윤진 서원대 사회복지학부 교수

kwat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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