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혼란스러운 시대다. 국내외 정치·경제·금융시장을 총망라한다. 문제는 뾰족한 답이 없다는 것이다. 코로나19시대의 대표적인 키워드는 ‘뉴 앱노멀(New abnormal)’이다. 기존 이론과 해법이 더는 통하지 않는다. 불확실성은 커지고 미래 예측도 불가능하다. 지난해만 해도 코로나19만 끝나면 모든 게 평화로워질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글로벌 공급망 불안이 커지고, 러시아-우크라니아 전쟁까지 터졌다. 세계 정세는 소용돌이에 휩싸였고, 미국 금리 인상 기조까지 겹친 금융시장은 요동치고 있다. 국제경제질서는 미국과 중국 등을 중심으로 블록화되고 있다. 다시 냉전과 보호무역의 시대로 회귀한 듯하다.
이런 가운데 생존마저 위협받는 기업은 새 먹거리를 찾아야 한다는 압박감에 짓눌린다. 결과를 장담하지 못하더라도 일단 계속 도전하며 성과를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 뉴앱노멀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문제 해결의 지름길이다.
수많은 도전과 실패 속에 축적의 중요성을 알렸던 ‘축적의 시간’과 ‘축적의 길’로 유명한 이정동 서울대 교수는 얼마 전 ‘최초의 질문’이라는 화두를 던졌다. 지난 주말 동명의 저서를 감동 있게 읽었다. 그는 한국은 선진국이 제시하는 개념설계를 받아 충실히 실행하면서 오늘의 고지에 올랐다고 했다. 하지만 진정한 기술선진국이 되려면 독창적인 개념설계를 제시하면서 게임의 규칙을 만드는 힘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교수는 “이미 알려진 로드맵과 다르게 생각하고 새로운 길을 찾는 도전적인 최초의 질문을 던지는 것이 추격의 정점을 지나 진정한 기술선진국으로 가는 첫걸음”이라고 했다.
사실 질문이 더 어렵다. 사안을 정확히 꿰뚫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상상력과 통찰력(인사이트) 없이는 최초의 질문은 나올 수가 없다. 그런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바로 ‘비저너리(visionary)’다. 미래를 읽고 전망을 제시하는 사람이다. 아이폰으로 스마트폰 시대를 연 애플의 스티브 잡스나 테슬라로 전기차시장을 주도하고 스페이스X로 민간 우주 시대를 연 일론 머스크가 대표적이다.
국내에서도 삼성(이재용), SK(최태원), 현대차(정의선), LG(구광모) 등 주요 기업인이 각각의 분야에서 바이오, 배터리, 로봇, AI 등으로 시장을 넓히고 있다. 네이버(이해진), 카카오(김범수) 등 플랫폼 강자와 쿠팡(김범석), 우아한형제들(김봉진) 같은 유니콘기업도 떠오른다. 이들이 모여 24일 신기업가정신을 선포하는 등 변화와 도전 의지는 강하다.
누구도 가보지 않은 설원 ‘화이트 스페이스(새로운 분야)’에 족적을 남길 만한 승부수를 던지기는 만만치 않다. 비저너리의 개인적 자질도 중요하지만 이들이 커 나가고, 비전이 현실화될 수 있는 토양과 환경은 더욱 무시 못한다. 이는 국가 차원에서도 어떤 고유한 비전을 갖고 있느냐와도 연결된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성장의 문화’ 조성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 당연히 정부 차원의 마중물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담대하면서도 도전적인 최초의 질문을 던지고, 답을 하나하나 찾아갈 이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 기업과 국가를 먹여살릴 혁신적 기술도 이들에서 나온다. 뉴앱노멀 시대, 비저너리가 기업은 물론 국가의 명운을 좌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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