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취임 11일 만에 초고속으로 성사된 21일 한미 정상회담이 한미 동맹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며 마무리됐다. 평화와 번영을 위한 핵심축, 전략적 경제·기술파트너십,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 등 3개 파트로 구성된 공동 성명은 군사·안보에 국한했던 한미 동맹의 외연을 미래지향적 안보·경제·가치동맹으로 확장하는 내용으로 채워졌다. 전통적인 군사안보(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에서 출발한 한미 동맹이 어느덧 체급이 커져 이제는 공급망, 보건, 기후변화, 에너지, 디지털 등 다양한 분야를 포괄하는 명실상부한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미국 대통령이 일본에 앞서 정상회담차 한국을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중 패권경쟁과 우크라이나 사태로 새로운 국면을 맞은 국제정세에서 한국과의 파트너십이 미국의 국익에 중요하다는 점을 자각했을 것이다. 특히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견제하고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더욱 중요성이 커진 공급망 확보를 위해 반도체·전기차 배터리 제조강국인 한국과의 연대가 시급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한국 도착 첫날인 20일 세계 최대 반도체생산시설인 삼성 평택캠퍼스부터 찾은 것은 이를 뒷받침하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삼성의 초격차기술이 한미 동맹을 움직이는 지렛대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삼성이 정상회담의 처음을 열었다면 대미를 장식한 것은 현대차다. 정의선 현대차 회장은 22일 바이든 대통령과 함께한 자리에서 로보틱스,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도심항공모빌리티(UAM), 인공지능(AI) 등과 관련된 미국 현지 기업에 2025년까지 50억달러를 투자한다는 내용을 밝혔다. 앞서 발표한 55억달러 규모의 조지아주 전기차·배터리셀공장 투자액을 합하면 현대차로부터 총 105억달러 규모의 투자선물이 바이든에게 건네진 셈이다.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5개월 앞두고 일자리 만들기와 첨단 제품의 미국 내 생산이라는 공약이행이 큰 숙제였던 바이든에겐 이보다 값진 선물이 없을 것이다. 이번 회담에서 북한의 핵·미사일에 맞선 확장억제의 수단으로 핵을 처음으로 명시하는 등 한국 안보의 강도를 높인 것은 우리 기업들의 대담한 투자에 대한 화답이라 할 것이다. 삼성, 현대차뿐만 아니라 SK, LG 등 한국의 첨단 기업들이 한미 동맹 격상의 든든한 동력원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2박3일 짧은 일정 중 우리 기업 총수를 두 차례 만난 것에서 보듯 기업은 이제 경제안보의 주축이 됐다. 산업기술에서의 수월성이 국가경제뿐 아니라 안보와도 직결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정부는 우리 기업이 초격차기술을 선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국가적 역량을 쏟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