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서울 반포 한강공원은 그야말로 잔칫날 같았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사실상 모두 해제된 후 첫 주말이었다. 공원 잔디밭을 빼곡히 메운 사람들의 얼굴에선, 2년 넘게 쌓인 갑갑함을 풀어내리라 하는 격한 의지와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마스크만 없었다면 3년 전 봄 풍경과 똑같은, 완전한 일상회복이었다.
전국 프로야구 경기장에서도 우렁찬 응원소리가 터져나왔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사라진 육성 응원이 지난 23일부터 허용됐다. 텐트에서 경기를 관전할 수 있는 캠핑존은 일찌감치 매진됐고 돗자리를 펴고 관람할 수 있는 외야석도 꽉 들어찼다. ‘치맥’과 응원의 자유를 허한, ‘진짜’ 야구장의 귀환이었다.
한국야구위원회(KBO)에 따르면 27일 현재 총 103경기에 69만4749명의 관중이 입장, 경기당 평균 관중 6745명을 기록했다. 코로나19 이전 평균 관중의 약 60% 수준까지 올라왔다. 프로야구 흥행 요인도 하나둘 더해지고 있다. 전통적으로 고정팬들이 많은 롯데, KIA, 한화가 살아나고 있고, 잠실 라이벌인 LG와 두산의 고공행진, 전력과 마케팅에서 모두 신바람을 내고 있는 선두 SSG의 질주 등이다. 김광현 양현종 이정후 등 스타선수들의 눈부신 플레이도 활기를 더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 겨우 ‘인기 회복’으로 가는 길이다. 떠났던 야구팬들이 돌아오는 수준이라는 얘기다. 야구를 전혀 모르고 관심도 없던 ‘신규 고객’을 끌어들이는 일, 프로야구의 미래를 단단하게 지탱할 젊은 팬층을 맞이할 유인책은 너무나 부족한 게 현실이다.
지난달 한국갤럽이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는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3월 15일부터 17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4명에게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48%가 ‘좋아하는 국내 프로야구팀이 없다’고 답했다. 프로야구에 ‘전혀 관심 없다’는 응답은 44%다. ‘별로 관심이 없다’(23%)는 답변까지 합치면 국민 10명 중 7명은 프로야구를 관심 밖에 두고 있다는 얘기다. 더욱 절망스러운 건 20대 젊은층의 관심도가 2013년 44%에서 2022년 18%로 수직 낙하한 점이다.
이른바 ‘MZ세대’를 충분히 끌어안지 못했다는 자조가 나오고 있다. 3시간이 넘는 긴 경기시간, 국제대회서의 잇단 부진, 코로나19 방역지침 위반과 음주운전 등 각종 스캔들, 이로 인한 국내리그 불신 등이 신규팬들의 유입을 가로막고 있다. 여기에 뉴미디어 중계권을 보유한 통신 3사와의 계약문제로 유튜브와 SNS 등에 숏폼 콘텐츠와 ‘움짤’을 올리지 못하는 것도 젊은 세대의 흥미를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합리적이고 실용적이고 가치지향적인 MZ세대에게 프로야구가 점점 ‘노잼’의 올드한 이미지로 굳어질 위기다. 자칫 그들의 ‘여가문화 알고리즘’에서 ‘프로야구’라는 키워드가 사라질 가능성도 있다. 다행히 야구인 출신의 허구연 KBO 신임총재는 MZ세대 팬들의 중요성을 심각하게 인지하고 있는 듯하다. MZ세대를 타깃으로 한 다각적인 리그 운영 방침을 고민한다고 하니 희망을 걸고 있다.
이탈리아 작가 주세페 토마시 디 람페두사가 격동기 시칠리아를 배경으로 쓴 소설 ‘표범’에서 젊은 귀족 탄크레디는 귀족의 몰락에 탄식하는 삼촌에게 말한다. “많은 것이 그대로이길 바라면 많은 것이 변해야 합니다.” 한국 프로야구가 최고 인기 스포츠로서의 위상이 변치 않길 바란다면 많은 것을 바꿔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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