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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광장 - 윤창현> 금융 거래의 파수꾼 ‘자금세탁방지제도’
마약·테러행위 등 중대 범죄
자금동결로 효과적 제재 가능
한국 FATF 정회원으로 가입
검은돈 세탁행위 근절 진일보



몇 해 전 마카오에 있는 방코델타아시아라는 은행이 화제에 올랐다. 이유는 이 은행이 북한의 비자금을 관리해주던 사실이 적발됐기 때문이었다. 북한의 비자금은 52개의 계좌에 약 2400만달러가 은닉돼 있었는데, 이 자금에 대해 자금세탁 혐의가 적용되면서 한동안 인출이 동결됐고 북한은 상당한 압박을 받았다. 위조담배 제조, 마약거래, 위조지폐 제조 등을 통해 달러벌이에 나선 북한의 행위는 비판의 대상이 됐는데 이와 관련한 자금을 찾아내고 동결시킴으로써 북한의 잘못된 행위에 대한 제재를 가할 수 있었다.

한때 리비아의 지도자였던 카다피도 미국에 300억달러 가까운 비자금을 숨겨놓았는데 미국이 이를 찾아내 동결시킴으로서 쉽게 몰락한 바 있다. 이러한 노력이 가능한 것은 바로 자금세탁방지제도가 작동했기 때문이다.

AML/CFT. 언뜻 보면 암호처럼 보이는 이 표현은 각각 ‘Anti-Money Laundering’과 ‘Combating the Financing of Terrorism’의 약자다. 전자는 자금세탁 방지이고, 후자는 테러자금 조달 금지라는 의미로 쓰인다.

마약거래나 테러행위 같은 중대한 범죄에 있어서 항상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자금이다. 범죄의 질이 중한 만큼 큰 돈이 오가게 되고 거액의 현금거래가 이뤄지는 경우 범죄자는 이를 은행에 유입시킴으로써 합법적 자금으로 둔갑시키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바로 이 과정에서 자금세탁이 일어나는 것이다.

따라서 은행을 포함한 금융기관의 주요 임무 중 하나가 바로 이러한 자금세탁 방지 역할이며, 이를 위해 금융기관은 당국에 정보를 제공해 관련 정보를 한군데 집중시킨 후 이 정보를 제공한다. 또 이 정보에 대한 다양한 분석 등을 통해 자금세탁 행위를 적발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금융정보분석원(FIU)이 바로 자금세탁 방지의 첨병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금융 분야의 국정원에 해당하는 이 기구는 1000만원 이상의 거래 중 의심이 가는 거래 그리고 2000만원 이상의 현금거래 관련 정보를 보고받는다. 2011년의 경우 의심거래는 33만건 정도, 현금거래는 1130만건 정도가 보고됐다. 이처럼 자금세탁방지제도는 자본주의경제에 있어서 일종의 파수꾼 역할을 한다.

중요한 정보가 한 기관에 집중이 되다 보니 이 정보를 공유하고 싶어하는 타 기관도 많다. 국세청이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국세청에는 이미 많은 정보가 제공되고 있지만 더 많은 정보를 원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자금세탁 방지와 함께 금융실명제의 근간인 비밀보장, 영장주의원칙 그리고 금융소비자보호원칙도 중요하다. 거액의 현금거래가 모두 잘못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교회 헌금의 경우 거액 현금이 취급되는 경우가 생긴다. 당국이 거래정보를 분석하고 의심스러운 거래를 골라내어 제공하되, 영장이 제시되지 않는 일반적 거래 관련 정보는 자체적으로 보유하면서 비밀을 보장하는 것 또한 금융소비자보호 차원에서 중요하다. 보여줄 것은 보여주되, 가려줄 것은 가려줘야 하는 임무가 자금세탁 방지 기관에 주어진 셈이다.

일본ㆍ네덜란드를 포함한 대부분의 국가는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데, 미국이나 호주는 국세청 등과 쉽게 공유하는 체제가 갖추어져 있다. 이들 국가의 경우 기축통화를 발행하는 국가로서 국제적인 거래가 수반되면서 안전에 위협을 가하는 중대한 범죄의 예방이나 적발 차원 등에서 이러한 관행이 성립된 것으로 보이고 법적인 규정도 다소 다르므로 단순비교가 어려운 점이 존재한다.

이제 우리나라 금융정보분석원도 ‘FATF’라는 국제기구에 정회원으로 가입하면서 위상을 높이고 있다. 정회원 가입과 함께 송금자 정보제공 근거도 신설되고 입수자료명시제도도 도입된다. 마침 이번주가 자금세탁방지주간이다. 향후 이 제도를 더욱 발전시켜 금융거래의 파수꾼 역할이 잘 이뤄지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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