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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광장 - 서승환> 재벌규제와 경제민주화
경제민주화 지속적인 추진과제
성장잠재력 제고에 긍정효과
재벌때리기만 방법은 아닌데
대선주자 획일적 접근은 곤란




경제민주화와 관련된 논의가 시작된 지도 꽤 오래됐지만 최근 대선을 앞두고 이에 대한 논의가 유난히 활
발하다. 경제민주화의 명확한 정의에 대한 의견 일치는 없지만 경제민주화의 방법론은 놀라울 만큼 비슷하다. 순환출자제한, 출자총액제한, 금산분리 등 재벌에 대한 각종 규제를 강화하는 것이다. 똑같은 내용에 대해 얼마나 더 센 규제를 주장할 것인지의 차이만 있는 상황이다. 재벌규제가 경제민주화를 이루는 한 가지 유효한 방법이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경제민주화를 이루는 유일하고도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증거가 미약하다는 것이 문제다. 경제민주화라는 것이 대단히 복잡하고 중층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경제체제 아래서 경제민주화는 결국 시장경제의 창달을 통해 경제정의를 실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시장경제의 작동과정과 작동결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시장경제가 원활하게 작동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기회 균등의 바탕 위에 합리적인 시장경제질서가 확립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고 불합리한 차별을 없애며 법질서가 준수되게 하는 등의 장치를 확보하는 것 등이 필요하다.

어느 시장 경제의 작동결과 얻어지는 자원배분의 상태는 그 시장경제의 성적표와 같은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형평과 효율에 관한 해묵은 논쟁이 있다. 가급적 큰 떡을 만들어내는 것이 좋은 것인지, 아니면 사람들이 손에 쥔 떡의 크기를 비슷하게 하는 것이 좋은 것인지에 대한 논쟁이다. 현실적으로는 효율과 형평 중 어느 쪽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지의 정도 차이만 있을 뿐이다. 어느 한 쪽을 지나치게 무시하는 경제 체제가 살아남지 못한다는 역사적인 예로 20세기 후반의 사회주의 경제 체제를 들 수 있다. 개방개혁을 통해 효율을 좀더 중시한 사회주의 경제 체제는 살아남았지만 그렇지 못한 사회주의 경제 체제는 몰락했던 것이다.

다소간의 시차는 존재하지만 자본주의 경제 체제도 비슷한 경로를 따라갈 가능성이 높다. 달도 차면 기울고 무엇이든 지나치면 필연적으로 반작용이 있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지나치게 효율만 추구하는 과정이 너무 오래 지속되다 보면 형평에 대한 욕구가 비등점에 다다르게 마련이다. 일정한 성장단계 이후에는 형평을 강조하는 것이 오히려 효율을 더 높이는 요인이 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현재 상황이 바로 이럴 가능성이 매우 높다.

계층별 소득, 지역 간 소득, 조세의 누진성 정도, 산업의 집중도 등 각 분야의 형평성을 측정할 수 있는 각종 지표가 있다. 이들을 적절하게 고려해서 경제 전체의 형평성 정도를 나타내는 하나의 경제민주화 지수를 만든 후 그 값이 증가하는지의 여부에 따라 경제민주화 진전 여부를 판단할 수도 있다.

이러한 방법을 이용한 최근의 한 연구에 의하면 1980년대 중반 이후 우리나라의 경제민주화는 지속적으로 하락한 것으로 나타난다. 같은 기간 우리나라의 정치민주화가 비교적 빠른 속도로 진행되어졌다는 것과는 확연히 비교되는 결과다. 정치민주화가 정치 및 경제적 형평성을 저해할 수 있다는 다른 나라의 경험이 우리나라에도 적용되는 것이 아닌가 해서 씁쓸하다.

같은 기간 우리나라의 성장잠재력도 지속적으로 하락하였는데 이는 경제민주화의 후퇴가 성장잠재력의 저하와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현재의 경제민주화 수준이 유지되는 경우 2040년께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은 1%대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데 경제민주화의 진전으로 이를 2%대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경제민주화가 장기적으로 성장잠재력을 높이는 요인이 될 수 있는 개연성은 충분하다. 문제는 재벌 때리기만이 경제민주화를 이루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인가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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