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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영화 1억 관객은 축포이자 경고음
한국영화가 관객 1억명을 돌파하는 신기원을 이룩했다. 국민 한 사람이 최소한 두 편의 우리 영화를 본 것으로 세계적으로도 전례 없는 일이다. 자국 영화를 많이 본다는 영국도 겨우 1편 정도이며 영화와 예술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프랑스는 0.3편에 불과한 것에 비하면 놀라운 기록이 아닐 수 없다. 한국영화의 르네상스 시대가 활짝 열렸다고 평가할 만하다.

관객 1억명 금자탑은 ‘도둑들’과 ‘광해, 왕이 된 남자’ 두 편이 잇달아 1000만 관객을 넘어선 것이 큰 힘이 됐다. 여기에 ‘건축학개론’등 400만명 이상이 찾은 영화가 무려 9편에 이르는 등 다양한 흥행작들이 받쳐준 결과다. 이제 우리 영화도 참신한 기획과 자본, 탄탄한 구성을 토대로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많이 쏟아내고 있음이 입증된 것이다. 20~30대가 주도하던 관객층도 40~50대(‘부러진 화살’)와 10대(연가시) 등으로 넓어진 것도 영화계로선 큰 소득이다. 대외적으로도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가 베니스 국제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거머쥐어 한국영화의 성가를 한껏 높였다.

무엇보다 개방의 광풍 속에서 이 같은 대기록을 세웠다는 것이 대견하다. 지난 2006년 영화시장 개방 폭을 넓히기 위해 한국영화 의무상영일수(스크린 쿼터) 축소를 결정하자 영화계는 ‘한국영화 다 죽는다’며 격렬히 반대했다. 하지만 글로벌 무한경쟁에 노출된 한국영화는 치열한 생존 노력 끝에 확고한 자생력을 갖추게 됐고, 이제는 상황이 역전돼 외국영화가 오히려 우리 눈치를 보고 있다. 실제 할리우드 영화는 우리 대형 블록버스터 상영 시기를 피해 개봉 시점을 잡는다고 한다.

그러나 관객 1억명 시대의 그늘도 깊다. 대기업에 의한 스크린 독점과 수직계열화, 흥행의 양극화, 현장 실무 스태프의 열악한 처우 등 ‘제2 도약’을 위해 넘어서야 할 벽이 너무 높다. 대형 자본이 기획에서부터 투자ㆍ제작은 물론 상영 스크린까지 싹쓸이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반면 대기업 계열이 아닌 작품이나 독립영화는 스크린을 확보하지 못해 쩔쩔매는 일이 허다하다. 그나마 스크린을 내줘도 이른 아침이나 밤늦은 시간 배정이 고작이다. 민병훈 감독의 ‘터치’가 지난주 전격 조기 종영을 결정한 것은 스크린 횡포에 대한 극단적 반발이다. 영화 제작의 근간을 흔드는 스태프에 대한 수준 이하의 처우는 당장 개선이 필요하다. 영화판마저 양극화가 고착되면 한국영화는 언제든 깊은 수렁에 다시 빠져들 것이다. 관객 1억명 돌파가 축포이자 커다란 경고음으로 들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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