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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대선에 함몰된 국회, 비틀거리는 경제
국회 예산안 처리가 올해 또 파행이다. 대선을 고려해 22일까지는 반드시 처리하겠다던 지난 8월 여야 원내대표 간 합의는 결국 허사가 됐다. 빈말보다 더 심각한 것은 19대 국회가 벌이고 있는 기행적 행태다. 국민 앞에 뭔가 보여주겠다던 다짐은 간 곳 없고 구태정치의 표본인 18대 국회를 똑 닮아간다는 사실이다.

정상적이라면 지난주부터 예결위 계수조정소위가 가동돼 새해 예산안의 세입ㆍ세출 확인 작업에 나섰어야 하나 대선 장단에 발이 묶였다. 그 책임은 일차적으로 민주당에 있다. 새 예산에서 대통령의 몫으로 수조원을 떼어내 공약이행에 활용하자는 제안이 불씨다. 민주당은 후보의 공약 실현에 12조원, 새누리당은 3조원의 증액을 시도하고 있다. 갑론을박하다 애초 몇조원이 몇 배 이상 커진 것이다.

이는 한마디로 예산 심의 권한을 뛰어넘는 초헌법적 발상이자 정치적 오만일 뿐이다. 정 필요하면 여야 협의와 견제 아래 추경을 편성하면 되는 것이다. 뒷감당 못할 정도로 복지공약을 쏟아낼 때는 언제고 이제는 나라 살림을 짜는 곳을 대선후보 공약 뒤치다꺼리의 장으로 변질시키는 뻔뻔한 국회라면 더 이상 기대할 것도 없다. 이뿐이 아니다. 상임위마다 퍼주기 식 민원성 법안은 봇물을 이루면서 정작 민생법안은 줄줄이 표류하고 있다. 정부가 제출한 236건 중 고작 20여건이 처리됐지만 그것도 경제 관련 법안은 단 한 건도 없다. 경기침체 장기화에 대비한 서비스 부문 투자 확대도, 부동산 경기 활성화도 헛돌고 있다.

정치권은 계층 구분 없이 주저앉는 경제사정을 알기나 하는지 궁금하다. 가계건전지수는 3년째 하락해 기준점 이하로 곤두박질쳤다. 빚 감당이 안 되는 이들이 급증한 탓이다. 가계의 생활형편이 악화할수록 높아지는 엥겔지수는 12년 만에 기록을 갈아치웠다. 먹고사는 문제가 흔들린다는 얘기다. 유학이나 언어연수도 7년 만에 최저 수준이다. 중산층도 무너진다는 의미다. 삼성, 현대차, LG, SK, 포스코 등 대기업들도 계열사를 줄이고 설비투자를 대폭 축소하는 상황이 우리의 현실이다.

유럽 국가들은 재정위기가 장기화하자 반세기 만에 가장 지독한 긴축 예산안을 짜고 있다. 복지천국은 옛말이다. 정치권은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 진정 국민을 위한 방책을 세우는 데 골몰해야 할 것이다. 민주당의 제안에 맞장구친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도 문제가 있다. 국민을 위해서라도 임기 말일수록 정신 바짝 차리고 정치권의 무리한 요구에는 더 야무지게 대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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