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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 광장 - 함영훈> 사라진 브래들리, 모두가 승리한 미국, 우리는…
대선은 미래 위한 국민들의 잔치
토론 주저·단일화 논의 매몰…
국민들 피로감만 가중시킬 뿐
민심위한 진정한 솔루션 내놔야



미국 대선은 한국과 닮은 듯 다른 듯하다. 소재는 달라도 구도는 비슷하다. 냉혹한 대결구도가 미국 대선판 여러 국면에 나타났어도, 선거 후 모습은 한국과 달랐다.

최종 득표율은 오바마 50.5%, 롬니 47.9%로 2.6%포인트 차. 지표를 들여다보면 오바마 측이 승리라고 떠들 만한가 의구심을 느낄 구석도 보인다. 여성(55대44)은 오바마를, 남성(45대52)은 롬니를 더 많이 선택했다. 감성 파고들기 승부였다고도 할 만하다.

백인은 남자(35대62), 여자(42대56) 모두 롬니에게 몰아줬다. 유태인, 히스패닉, 흑인은 오바마의 손을 들었다. 개신교(42대57)는 롬니를, 가톨릭(50대48)과 교회 안 가는 유권자(62대34)는 오바마에게 더 많은 표를 던졌다. 오바마는 이른바 미국 ‘주류’ 세력의 지지를 40%밖에 얻지 못했다.

젊은층(18~44세)은 오바마를, 나이든 부류(45세 이상)는 보수 성향의 롬니를 지지했다. 대졸은 50대48, 고졸 이하는 51대47로 학력이 변수가 되지는 못했다.주류 세력-기독교-장년ㆍ고령층이 공화당을, 비주류-비기독교-청년ㆍ중년층이 민주당을 밀었던 점은 강남-기독교-장ㆍ노년층이 새누리당에, 강북-비기독교-2040세대가 민주당에 약간 더 쏠려 있는 한국 정치구도와 흡사하다. 이 정도의 대결구도는 역사 깊은 정치철학과 관련있기에 심각한 것은 아니다.

문제는 ‘감정정치’다. 미국에는 인종감정이, 한국에는 지역감정과 색깔논쟁이 현안의 크기에 따라 선거판 전체를 흔드는 경우가 많았다.

1982년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 때 여론조사에서 앞섰던 흑인 후보가 개표 때 백인 후보에게 패배한 ‘브래들리 효과’는 여론조사의 함정 사례로 널리 인용된다. 일부 백인이 인종적 편견을 숨기려고 여론조사 때는 흑인 후보를 지지한다고 거짓 응답했다가 기표소에서 본색을 드러내는 행태를 말한다.

2008년 대선 직전 오바마 후보는 공화당의 매케인 후보에게 14%포인트나 앞서고 있었지만, 뚜껑을 열자 7%포인트 차로 이겼다. 혹자는 브래들리 효과가 사라졌다 했지만, 그리 속시원하지는 못했다. 이번에는 고질적인 감정투표가 없어졌다. 투표 며칠 전까지 0~2%포인트 차 박빙의 승부가 펼쳐졌고, 개표 결과도 비슷했다. 인종 문제가 변수가 되지 못했던 것이다.

롬니 측근이 영국 외교무대에서 “우리는 앵글로색슨의 유산을 물려받았다”고 했다가 역풍을 맞고, 오바마 쪽은 물론 롬니 측이 함께 인종차별적 발언을 자제시킨 것도 감정정치의 종식에 기여했다.

4년 전 공화당 선거유세 때 한 지지자가 “오바마는 케냐 사람이고, 무슬림”이라고 했다가 매케인 후보가 직접 나서 마이크를 뺏은 장면은 감정정치 청산의 시발점으로 평가받았다.

선거 후 롬니의 아름다운 승복과 축제분위기는 선거 후 분열의 여진을 오래 남기는 우리에게 부러운 모습이다. 롬니는 “당파싸움이라는 모험을 할 여력이 없다. 나는 여러분과 함께 오바마와 이 위대한 나라를 위해 진정으로 기도하려 한다”고 말해 갈채를 받았다.

다행히 18대 대한민국 대선에서 색깔논쟁이 양당 안팎의 비판으로 잦아들고, 지역감정 유발 발언도 자제하고 있어 ‘감정정치 종식’의 기대감을 갖게 한다.

대선은 ‘미래를 위한 잔치’라는 점에서 토론의 마당은 하이라이트다. 토론을 주저하던 쪽이나, 후보 단일화 논의에만 매몰된 쪽이나 국민 피로감을 가중시킨 책임이 있다. 정치쇄신협의기구 구성이다, ‘반값 선거’다 해서 건설적 제안도 나왔다. 야권 한 쪽에서 단일화를 위해 ‘빈 그릇’을 내놓는다 했으니, 하려면 빨리 해치워라. 겉 다르고 속 다르면 패배를 각오하라. 정치공학 문제 풀 시간을 달라고 하는 건 오버다. 국민은 솔루션을 원한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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