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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프 칼럼 - 강윤선> 술, 가늘고 길게 마시자
오늘도 술집에 간다. 나는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술을 좋아하고 술자리의 분위기와 사람들과의 대화를 좋아한다.

아주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술을 먹고 필름이 끊어져 불안한 마음으로 하루를 보낸 적도 많다. 그런 날은 어제 내가 무엇을 했는지 생각이 나지 않아 함께한 사람에게 “어제 내가 무슨 실수했니?”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물어보곤 했다.

술이란 참으로 묘하다. 평소에는 생각나지 않던 사람이 왜 그토록 보고 싶고 그리운지, 또 할 말은 왜 그렇게 많은지…. “야, 우리 이러고 살지 말자. 섭섭하다. 내가 그때 미안했다. 우리가 남이냐?”하면서 갑자기 세상을 폭넓게 이해하는 포용력 있는 사람으로 변한다.

그러나 요즘은 왠지 술 마신 후의 내 행동이 싫어졌다. 술 마신 다음 날은 일상이 흐트러진다. 옛날에는 하루면 숙취가 풀리던 것이 요즘은 3~5일 이상 간다. 나이가 들수록 숙취가 지속되는 시간이 길어진다. (편견인지 몰라도) 여자로서 공개적으로 이런 이야기를 쓴다는 것도 부끄러울 정도다.

미용업은 사람을 상대하는 비즈니스다. 세상이 아무리 디지털화된다 해도 내 직업은 영원한 아날로그업이다. 사람의 머리모양을 아름답게 하는 직업이므로 기계가 대신할 수 없다. ‘피플 비즈니스’이기 때문에 우리에겐 어떤 것보다 소통이 중요하다. 그래서 평소 나는 주변 사람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는데, 차를 마시는 자리보다는 술자리가 서로의 마음을 털어놓기 좋다. 그래서 술자리가 재미있어졌고, 종종 술의 힘을 빌려 꽤 용감한 리더로 변신한다.

“그래, 내가 해줄게. 걱정 마. 우리는 할 수 있어” 술잔을 부딪치며 ‘고.사.마(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마시겠습니다)’를 외친다. 술잔을 비우고 머리 위에 술잔을 턴다. 술집에서는 술을 마시고, 밥집에서는 밥을 먹고, 노래방에서는 노래를 하는 것이 맞는 것이라고 말하며 ‘마시자’고 서로를 부추긴다. 요즘은 그 멋진 술자리가 부담스럽고 겁이 난다. 이제 몸이 지쳤나 보다. 그래도 행여 나만 왕따 당할까봐 오늘도 나는 술자리에 간다. 내가 늘 여왕대접을 받는 사총사모임 술자리다. 남자 셋, 여자 하나. 내가 홍일점이다.

어느 날, 그 자리에서 나는 용기를 내어 이야기했다.

“솔직히 나는 술 마시는 것이 힘들다. 그런데 혹시 술집에 와서 술을 안 마시면 나만 왕따시킬 것 같아 불안해서 참석했는데 옛날 같지 않고 마음이 무겁다.”

나의 이야기를 듣고 갑자기 본인들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우연인지 한동안 못 만난 사이에 한 분은 암 수술 후 건강의 이유로 많이 못 마시고 또 한 분은 술이 옛날 같지 않아 부담스럽다는 등의 이야기였다. 아! 모두 같은 마음이었구나. 그날 우리는 결론을 내렸다. 이렇게 좋은 술자리를 나이들어서도 오래오래 이어가려면 지금부터 적게 마셔야 한다고. 이제부터 1차만 하고 집에 일찍 들어가기로! (술은) 가늘고 (오래오래 살며) 길게 마시기로! 역시 멋진 우리 사총사다. 이렇게 생각하니 모두 다행스럽기도 하고 위로가 되었다.

요즘은 무거운 술자리가 아니라 부담 없는 술자리가 최고의 트렌드다. 그동안 좋으면서도 마음이 무겁던 술자리가 가볍고 즐거운 자리가 되었다. 이제부터는 술을 조금 마시는 것을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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