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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광장>경제민주화 논쟁의 허실(虛實)-박종구 한국폴리텍대학 이사장
경제민주화를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여야 대선후보가 줄줄이 공약 발표에 나섬에 따라 1987년 헌법에 최초로 명문화된 경제민주화가 이번 대선의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대한민국 헌법 제119조는 “경제 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해 경제민주화를 헌법적 가치로 인정하고 있다. 2004년 헌법재판소도 경제민주화 이념을 경제영역에서 정의로운 사회질서를 형성하기 위하여 추구할 수 있는 국가목표로서 개인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국가행위를 정당화하는 헌법규범으로 정의했다.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민주화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균형, 빈부격차 해소, 경제주체간의 공정한 거래질서 확립이 핵심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 동반성장, 양극화 해소, 경제적 약자 보호 그리고 공정한 게임룰 적용이 경제민주화를 위한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된다.

시대적 과제인 경제민주화를 추구함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으나, 현실적으로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정책목표의 상충 문제를 어떻게 합리적으로 극복할 것인지가 관건이 된다.

우선 경제민주화와 경제성장의 상충가능성이다. 올 경제성장률이 2%대로 낮아지고 내년 이후 국내외 경제전망도 낙관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성장잠재력을 해치지 않으면서 민주화 과제를 단계적으로 일관된 의지를 가지고 추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정당학회의 최근 설문조사에 따르면 차기 대통령의 우선적인 과제로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이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다수 국민이 안정된 먹거리와 일자리를 간절히 바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단기적 경기대응을 실기하지 않으면서 민주화 해법을 도출해 가는 균형된 접근방식이 절실히 요청된다. 경제민주화는 헌법적 지침이지 경제위기의 해법이 될 수는 없다는 원로 경제인의 고언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대기업에 대한 정책 기조의 문제이다. 현재 출자총액 제한 부활, 순환출자 금지, 계열 분리 명령제 등 다양한 규제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대기업 정책은 소위 재벌의 잘못된 관행을 어떻게 바로 잡을 것인지, 오너의 경영 전횡을 어떻게 적절히 규제할 것인지에 맞춰져야 한다.

경제민주화는 불공정하고 불합리한 거래질서를 시정하는데서 출발한다. 동네상권을 장악하고 국내시장에 안주하며 이윤추구에만 몰두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엄격한 규제의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 반면에 수출과 해외시장 개척에 능동적으로 나서고 과감한 연구개발 투자를 통해 혁신을 선도하는 기업은 적극적으로 지원을 해주어야 한다.

기업 간 옥석(玉石)을 확실히 구분해야 한다. 몇 프로의 지분으로 기업 전체를 자기 것 인양 운영하는 독선적 행태, 소위 황제경영은 엄격히 규제되어야 한다. 일감 몰아주기, 특수 관계인에 대한 부당지원, 오너의 배임이나 횡령 등 부정행위 등에 대해서도 경제 정의나 ‘법 앞에 평등’ 원칙이 철저히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각종 경제민주화 정책이 자칫 복지나 정책 포퓰리즘으로 변질되는 것을 극력 경계해야 한다. 양극화 해소나 빈부격차 완화를 위해서는 재정투자의 확대가 불가피하며, 이에 소요되는 재원은 증세나 국채발행을 통해 조달해야 한다. 그러나 가뜩이나 쪼들리는 살림살이에서 증세는 현실적으로 어렵고 결국 국채발행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국가채무의 증가로 인한 재정위기는 일본과 유럽, 남미 등 지구촌 곳곳에서 목격되고 있으며 현재의 글로벌 경제위기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다. ‘복지확대→채무증대→저성장→신인도 하락’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에서 우리만이 자유로울 수는 없다.

우리경제가 IMF 외환위기, 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그나마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건전한 재정운영 및 국가채무관리 덕분이었다. 전직 장관과 중진 경제학자가 중심이 된 한국선진화포럼과 건전재정포럼에서 제기된 ‘건전재정이 국정의 마지막 버팀목’이라는 주장은 매우 엄중한 경고가 아닐 수 없다. 건전한 나라살림이 전제가 되지 않는 민주화 해법은 사상누각(砂上樓閣)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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