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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프 칼럼 - 박인호> 도시의 시간 · 전원의 시간
숨 가쁜 도시를 내려놓고 실제 시골로 귀농이나 귀촌을 하게 되면, 이후 도시에 나갈 일이 별로 없다.

물리적 거리나 비용 때문만은 아니다. 인간이 만든 도시의 시간과 원래부터 있던 전원의 시간이 전혀 다른 까닭이다.

거대한 도시의 시계는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이 팽팽 돌아간다. 도시인들은 그 속에 매몰된 채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이며 살아간다. 내 시간은 존재할 여지가 없다. ‘빨리빨리’는 도시의 시계가 만들어낸 병이다.

반면 전원의 시간은 오롯이 내 소유가 된다. 도시와 마찬가지로 열심히 땀 흘려 일하지만, 전원의 시계에 맞춰 사계절을 매 순간 느끼고 천천히 음미한다. 전원생활을 ‘느림의 미학’이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리라.

전원생활 3년차인 필자는 지난 추석 연휴 때 되레 몹시 바빴다. 한가위 당일(9월 30일)은 물론 10월 2, 4일에도 하루걸러 강원도 홍천의 산골에서 서울까지 먼 길을 왕복했다. 전원에서의 행복한 인생 2막을 꿈꾸는 이들에게 귀농ㆍ귀촌 입문 강의를 하기 위해서였다.

서울시농업기술센터에서 마련한 ‘후반기 전원생활교육’을 받기 위해 온 이들은 나이가 지긋한 노인부터 비교적 젊은 30~40대까지 다양했다. 특히 남성들에 비해 전원생활에 소극적이던 여성들의 참여가 최근 들어 부쩍 늘었다. 얼마전 필자가 한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실시한 전원생활 강좌에서도 예상보다 많은 주부 수강생들이 몰려 내심 놀랐던 적이 있다.

전원생활에 대한 이 같은 도시인들의 뜨거운 관심은 2010년 이후 시작된 2차 귀농ㆍ귀촌 붐으로 이어지고 있다. 실제 올 들어서도 귀농ㆍ귀촌인구 증가세는 가히 폭발적이다. 농림수산식품부에 따르면, 올 상반기 귀농ㆍ귀촌인구는 8706가구, 1만7745명에 달했다.

지난 2005년까지 연간 1200가구 수준에 불과하던 귀농ㆍ귀촌인구는 2010년 4067가구, 2011년 1만503가구로 급증했다. 통상 농어촌 이주는 하반기에 집중되기 때문에 올 한 해 전체 귀농ㆍ귀촌인구는 지난해의 배를 넘어설 것이라는 게 농림수산식품부의 전망이다.

본격적인 은퇴기를 맞은 베이비부머(55~63년생 758만여명)의 탈출구이든, 아니면 새로운 삶의 가치를 위한 선택이든지 간에, 2차 귀농ㆍ귀촌 붐은 심각한 공동화와 고령화로 신음하고 있는 농어촌을 되살릴 수 있는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인 현상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최근의 귀농ㆍ귀촌 열풍을 보면, 도시의 시계에 맞춰진 과속 질주라는 우려가 드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귀농이든, 귀촌이든 ‘빨리빨리’는 실패를 부를 가능성이 높다. 느리게 살겠다고 농촌으로 와서는 정작 전원의 시간은 맛보지도 못한 채 도시에서처럼 늘 쫓기듯 산다면 귀농ㆍ귀촌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전원생활은 곧 자연에 순응하는 삶이다. 그건 자연의 시계에 맞춰 산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자연에 순응하는 삶은 느리게 사는 것이고, 그것을 위한 준비과정과 실행 또한 서둘러서는 안 된다. 도시의 시계를 내려놓을 때 비로소 전원의 시간은 내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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