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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 - 이해준> 한국의 소프트파워
지향하는 바가 다르더라도 창조적이고 독창적인 콘텐츠를 제대로 평가해주는 사회문화적 분위기와 자유로운 창작 환경, 다양성에 대한 존중이야말로 한국의 문화적 잠재력을 소프트파워로 연결하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한국의 대중문화가 다시 한 번 세계를 놀라게 만들면서 일약 전성기를 맞는 양상이다. 김기덕 감독이 영화 ‘피에타’로 세계 3대 영화제의 하나인 베네치아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더니, 이번엔 가수 싸이가 ‘강남스타일’로 세계를 들썩이게 만들고 있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영국(UK) 음악차트 정상에 오른 데 이어 미국의 빌보드 차트에서 2주 연속 2위를 지켰다. 기대했던 1위로 올라서지는 못했지만, 싸이가 3주간의 미국 활동을 마치고 귀국한 상태에서도 그의 인기가 식지 않고 있음을 보여줬다.

싸이와 김기덕이 이룩한 쾌거는 건국 이래 최대의 문화적 성취이며, 그동안 한국 대중문화가 쌓아온 저력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한국 영화계는 독특한 역사적ㆍ사회적 배경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콘텐츠를 생산해 미 할리우드에 휘둘리지 않는 시장을 구축했으며, 국제 영화제에서 크고 작은 상을 꾸준히 받는 등 실력을 인정받아왔다. 가요는 어떠한가. 철저한 기획과 강도 높은 훈련으로 한국의 아이돌 그룹들이 노래와 율동의 새로운 영역을 구축하면서 K-팝 열풍을 일으킨 지 오래다. 아시아는 물론 최근에는 유럽과 미국, 심지어 지구 반대편 중남미에도 열풍을 일으킬 정도로 K-팝의 열기가 뜨겁다.

이런 문화적 성취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기간에 경제적 성공을 거둔 한국이 이제 소프트파워 강국으로 부상할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소프트파워란 군사력이나 경제력 등 물리적 힘을 의미하는 하드파워와 달리 문화나 예술, 교육 등 인간의 이성과 감성을 통해 미칠 수 있는 영향력으로, 갈수록 그 중요성이 증대되고 있다. 소프트파워가 강한 나라가 국제사회에서 많은 영향력을 미칠 수 있고, 그것이 그 나라의 경제적 부가가치를 높인다는 측면에서 이를 강화하는 것이 향후 국가적 과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 한국 대중문화의 성공이 소프트파워의 강화로 연결될지 확신하기 어려운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이들의 성공을 반가워하면서도 이것이 한때 ‘반짝’ 했다 가라앉는 이례적 문화현상으로 끝날 수 있다는 우려가 함께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김기덕의 영화와 싸이의 노래는 한국에서 비주류 또는 ‘B급 문화’로 취급받아왔다는 점이다. 물론 B급 문화가 저급하거나 수준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대중의 진정한 문화적 욕구를 반영한 것으로 새롭게 해석되고 있지만, 주류가 이룩하지 못한 것을 비주류가 성취한 셈이다. 또 이들의 콘텐츠가 한국에서 주목받거나 성공하지 못하는 사이에 오히려 해외에서 높이 평가하면서 국내에 역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그만큼 다양한 문화에 대한 한국의 수용 태세가 갖추어져 있지 않은 셈이다.

지향하는 바가 다르더라도 창조적이고 독창적인 콘텐츠를 제대로 평가해주는 사회문화적 분위기와 자유로운 창작 환경, 다양성에 대한 존중이야말로 한국의 문화적 잠재력을 소프트파워로 연결하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그것이 문화계만의 일이 아님은 분명하다. 정치권이나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다. 정치적 입장이 다르다는 이유로 연예인의 방송 출연을 제한하거나 새로운 문화권력으로 등장한 대형 엔터테인먼트 기업이 인기를 좌우하는 분위기에선 새로운 콘텐츠가 발을 붙이기 어렵다.

김기덕과 싸이의 성공이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한국 소프트파워 강화 방안을 진지하게 고민할 때인 것이다. 

hj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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