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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쉼표> 운명
그리스 신화에 운명의 여신 모이라(Moira)는 셋이다. 가장 젊은 클로토는 인간의 운명을 이끄는 실을 잣는 일을 한다. ‘제비뽑기’란 뜻의 라케시스는 인간 운명의 실을 감는다. 아트로포스는 가차 없이 실을 잘라 버린다. 인간의 운명을 쥐락펴락하는 특권을 받은 이들은 아버지인 제우스도 간섭하지 못했다. 신화의 은유에 기대면 인간의 운명이란 ‘팔자소관’이란 결정론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이미 우리의 삶이 프로그래밍이 돼 있는 마당에 인간의 몫은 운명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밖에 없다. 하지만 운명의 묘미는 인간들이 자신의 운명을 알지 못하는 데 있다. 꽃은 대부분 봄에 피지만 낙엽이 지는 때를 기다려 그제서야 피는 꽃도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동지인 문재인 후보가 제1야당인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로 확정됐다. 문 후보가 대중에게 관심을 받게 된 것은 지난 1월 ‘힐링캠프’ 출현 때부터다. 방송 당시 그는 수첩을 꺼내들었다. 수첩엔 노 전 대통령의 유서가 고이 접혀 있었다. 문 후보는 “차마 버릴 수 없어 그래서 가지고 다닌다”고 했다. 유서에는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운명이다’란 말이 ‘운명’처럼 씌어져 있다. 문 후보가 지난해 내놓은 자서전도 ‘문재인의 운명’이다. 문 후보는 책에서 ‘노무현과 나는 아주 작은 지천에서 만나 험하고 먼 물길을 흘러 왔다. 바다로 갈수록 물과 물은 만나는 법이다. 역사의 바다로 함께 흘렀으면 좋겠다’고 했다. 노 전 대통령도 문 후보를 생전에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란 표현을 썼을 정도로 둘의 관계는 각별하다.

문재인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운명의 여신들은 이미 12월 대선의 승자를 결정해 놓았을 것이다. 그야말로 대한민국의 ‘운명’이다.

전창협 디지털뉴스센터장/jljj@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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