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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읽기 - 정재욱> 준비 안 된 은퇴는 재앙이다
즉시연금 과세 방안이 논란이다. 하지만 이 상품은 노후 대비용으로 활용되고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우를 범할까 걱정이다.


은퇴를 시작했거나 목전에 둔 이른바 ‘베이비부머’ 세대의 최대 관심은 건강과 노후준비다. 아직 50대인 이들은 수명 100세 시대를 살아가야 한다. 살아온 날과 살아갈 날이 거의 비슷하다는 게 놀라우면서도 은근히 두렵다. 물론 100살까지 꽉 채워 살겠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잔여수명이 크게 늘었으니 살아 있는 동안의 삶은 최소한 인간다워야 한다는 생각은 분명하다. 그러려면 돈과 건강은 필수다. 이런 중대한 사실(?)을 이들은 이제야 깨달았다.

그래도 이 둘 중 건강 챙기기는 어느 정도 대비가 가능하다는 건 큰 다행이다. 재원 고갈 우려가 있기는 하지만 뿌리를 내린 건강보험 시스템은 든든한 우군이다. 또 동네 공원마다 체육시설도 비교적 잘 갖춰져 있고 자전거도로와 등산로 정비도 수준급이다. 본인만 부지런하면 큰돈 들이지 않고도 건강을 관리하는 데 문제는 없을 듯싶다.

그러나 돈 문제는 다르다. 그저 막막하고 깜깜한 벽이 느껴진다. 새벽 별 보고 나가 밤 그늘이 깊어서야 퇴근하며 열심히 살아왔지만 은퇴를 전후한 시점에서도 막상 손에 쥔 건 아무것도 없다. 살인적인 사교육비에 등이 휘고, 다락같이 뛰는 집값 따라잡느라 자신의 미래에 대한 투자와 준비는 소홀했던 것이다. 겨우 남은 게 집 한 칸이지만 이마저도 자식들 결혼자금을 생각하면 온전한 내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준비되지 않은 은퇴는 본인은 물론 국가와 사회의 재앙이다. 은퇴 후 안정적 수입이 없으면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것은 순식간이다. 그에 따른 세대간 갈등 유발은 사회 통합에도 큰 걸림돌이다. 이미 재앙은 현실화되고 있다. 은퇴자 10가구 중 4가구가 소득이 최소생활비에 미치지 못하는 은퇴 빈곤층이라는 조사 결과도 있다. 우리 사회가 미래로 나아가는 데 해소해야 할 최우선 과제가 아닐 수 없다. 더욱이 우리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고령화사회로 빠르게 옮겨가고 있다. 그 대열에 750만 베이비부머가 무더기로 가세하고 있다.

은퇴 빈곤층을 줄이는 길은 두 가지다. 은퇴자들의 풍부한 경험을 살려 많은 일자리를 제공하는 게 최선이다. 하지만 그게 현실적으로 쉽지는 않다. 그래도 정부와 민간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방안을 찾아야 한다. 정치권도 이 대목을 소홀히 해선 안 된다. 표심의 중심이 어디에 있는지 잘 보라는 것이다.

그다음은 연금을 통한 안정적 수입을 확보하는 것이다. 주택연금을 활성화하고, 사적 연금에 대한 지원을 더 강화해야 한다. 물론 은퇴자들에게 적지 않은 도움을 주는 국민연금이 있다. 하지만 국민 용돈이라 할 정도로 급여액이 너무 적다. 그나마 베이비부머 3명 중 2명은 수혜범위 밖에 있다. 그렇다고 재정으로 공적 연금을 마냥 지원할 수도 없는 일이다.

공적 영역이 감당하지 못하는 부분은 사적 영역에서 메울 수 있도록 정부가 유도해야 한다. 그리 어려울 것도 없다. 연금 상품에 대한 세제 혜택을 더 늘리면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다. 세수가 다소 줄더라도 복지 차원의 투자라고 생각하면 되레 남는 장사일 수도 있다.

정부의 즉시연금 과세방안이 논란이다. 금융상품 간 과세 형평성과 고액자산가들의 세금회피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게 그 이유다. 하지만 이 상품은 대부분 노후 대비용으로 활용되고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우지 않을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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