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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복지정책, 무상보다 선별로 가는 게 맞다
0~2세 영유아에 대한 전면 무상보육이 시행 1년도 안 돼 중단될 위기다. 기초지방자치단체가 확보한 관련 예산이 모두 소진돼 지원할 돈이 바닥난 것이다. 서울 서초구가 당장 이달 중순을 넘기기 어렵다며 제일 먼저 백기투항을 했고, 나머지 시군구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아 중앙정부 지원이 없으면 줄줄이 나자빠질 판이다. 소요 재원과 재정 여건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서둘러 제도를 도입한 정치권의 복지 포퓰리즘이 빚은 결과다.

부자 동네라는 서울 서초구가 중단 첫 주자가 된 것은 제도의 맹점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서초구의 경우 소득 하위 70%에 지원되는 무상보육 대상자는 당초 1662명이었다. 그러나 올해 모든 가정으로 대상자가 확대되면서 5113명으로 세 배가 늘었다. 공짜로 갓난아이들을 보살펴준다니 집에서 키울 여력이 충분한데도 어린이집 등 보육시설로 대거 몰려나온 것이다. 그 바람에 확보된 예산이 일찌감치 바닥났고 연말까지 120억원 이상이 부족할 전망이다. 서울의 강남 3구로 불리는 인근 강남구와 송파구도 내달이면 예산이 고갈되는 것은 같은 맥락이다.

한번 시행된 제도는 여간해서 중도에 중단하거나 축소ㆍ수정하기가 어렵다. 정부에 대한 신뢰 저하는 물론 이로 인한 사회적 혼란과 갈등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복지에 관한 것이라면 더 그렇다. 이번 사태도 마찬가지다. 영유아 무상보육제도의 부작용과 한계는 시작 전부터 사실상 예고된 것이다. 정부가 일정 소득 이하 가구만 지원을 하겠다고 했는데 정치권이 중간에 끼어들어 대상을 전격 확대했다. 선거를 앞두고 공짜 복지로 유권자들의 환심을 사려 한 것이다. 무분별한 복지경쟁과 인기영합적 정책 결정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정치권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번거롭더라도 제도가 잘못됐으면 가능한 한 빨리 고쳐야 한다. 보육에 필요한 비용을 국가가 부담해 출산율을 높이고 여성들의 사회 활동을 지원하는 것은 좋지만 아직은 부잣집 자녀와 손자까지 지원할 정도로 우리 재정이 넉넉하지는 않다. 그보다는 더 어렵고 힘든 소외계층의 지원을 한푼이라도 더 늘리는 것이 사회 정의에도 부합하는 일이다. 기획재정부가 4일 ‘선별적 무상복지’ 방침을 언급한 것은 방향이 맞다. 곧 대선전이 본격화되면 정치권은 다양한 공약과 정책을 쏟아낼 것이다. 하지만 당장 한 표에 급급해 거위의 배를 가르는 오류를 범해선 안 된다. 미래를 내다보고 합리적 정책을 제시하는 지도자가 누구인지 국민들은 분명히 가려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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