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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책> 자본주의 4.0에선 정부와 시장은 상생해야
‘자본주의 4.0’이란 말이 우리 사회 화두로 떠올랐다. 금융위기로 시장의 실패가 확증되면서 자본주의 내 구조적 변화에 대한 요구와 함께 급부상했다. 여기엔 정부의 역할과 상생, 공존 등의 가치가 주요 개념으로 등장한다. 자본주의 4.0이란 말을 처음 쓴 이는 영국의 언론인이자 경제평론가인 아나톨 칼레츠키다. 2010년 6월에 낸 ‘자본주의 4.0: 위기 이후 새로운 경제의 탄생’이란 책을 통해 그는 2008년 금융위기로 신자유주의가 붕괴되고 새로운 자본주의로 나아가고 있다며, 이 새 시스템을 자본주의 4.0이라 명명했다. 

이번에 번역, 출간돼 나온 ‘자본주의 4.0’(컬처앤스토리)에서 그는 책 머리에 의미 있는 말을 남겼다.

“2008년 9월 15일에 무너진 것은 단지 하나의 투자은행이나 금융 시스템이 아니다. 정치철학과 경제 시스템 전체이며, 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과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방식이다.”

칼레츠키의 관점은 자본주의 자체도 진화한다는 것이다. 고정돼 있지 않고 위기를 통해 재탄생되는 시스템이라는 얘기다.

즉 과거 영국의 산업혁명으로 시작된 현대 자유방임 자본주의가 제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 혁명, 미국의 대공황 등 정치ㆍ경제적 충격으로 쇠퇴하고,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 존슨의 위대한 사회 등 복지국가 개념을 포괄하는 새로운 버전의 자본주의 시스템으로 탈바꿈한 게 첫 궤적이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자본주의 1.0에서 2.0 버전의 출시다. 경제학에서 ‘수정 자본주의’라 부르는 이 체제는 40년이 지난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글로벌 인플레이션이라는 또 다른 거대한 경제위기에 처하면서 신자유주의(자본주의 3.0)로 또 한 번 진화한다. 저자는 이제 다시 40년이 지난 2007~2009년 세계 경제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다고 본다.

저자가 자본주의 진화의 고리로 보는 것은 시장과 정부, 정치와 경제의 길항관계다. 193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는 언제나 정부가 옳고 시장은 잘못됐다는 식이었다. 이는 신자유주의를 불러왔다. 그러나 금융 주도의 시장근본주의는 극단적인 반정부 이데올로기라는 자기 부정으로 결국 금융위기와 함께 무너졌듯, 둘은 맞서왔다. 저자는 금융위기도 이런 관점에서 해석한다. 2008년 금융위기의 원인으로 지적되는 주택경기 과열과 가계 부채 증가는 정상적인 경기 순환의 한 과정이었을 뿐, 정부가 적절하게 개입하지 못한 결과라는 것이다. 시장근본주의 사고에 빠진 부시 행정부가 금융 시장에 대한 정부 규제의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은 대가다. 정확히 말해 미국 정부가 위기의 중요 단계에서 치명적으로 지원을 연기한 이유는 경제이론의 탈을 쓴 정치이데올로기 때문이었다는 주장이다.

자본주의 4.0은 따라서 또 한 번의 구조적 변화를 요구한다. 저자가 꼽는 자본주의 4.0의 특징은 정부와 시장의 역할 가운데 하나만 강조했던 이전 시대의 경제 인식과는 달리, 정부와 시장 모두 잘못될 수 있다고 본다. 또 이에 바탕을 두고 정치와 경제를 적대적인 관계가 아닌 협력하는 관계로 인식한다.

또 다른 특징은 복잡성과 불확실성을 인정하고 공공 정책과 경제 전략에서 실험 정신과 실용주의를 강조한 데 있다. 신고전학파의 주장처럼 시장은 합리적ㆍ효율적으로 예측될 수 있는 게 아니란 건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불확실한 세상에서는 시장의 결정과 정부의 결정 모두 시행착오를 거치며 갈지자 행보로 나아갈 것이다. 정부 정책은 경제 시스템이 변화하는 여건에 적응하면서 계속 진화해가야 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실용주의는 시장 시스템의 가장 큰 미덕이랄 수 있는 시행착오와 오류를 바로잡는 능력과 관련이 있다.

민간과 공공 부문의 역할이 모두 중요하다는 점에서 저자는 자본주의 4.0을 ‘적응성 혼합 경제’라고 규정한다. 세계 경제가 회복되지 않고 자본주의가 진화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그의 답도 준비돼 있다.

“이런 경우에 부와 권력은 미국과 유럽에서 아시아로 빠르게 옮겨갈 것이다. 서구의 금융 시스템은 위기에 취약하고 불안정한 상태로 유지될 것이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국가의 경제 발전 위축은 불가피하다.”

현재의 경제위기를 ‘자본주의 시스템의 진화’라는 역사적 맥락에서 바라봤다는 점이 칼레츠키의 새로움이다. 그의 자본주의 4.0이란 개념은 아직 많은 논의와 담론이 필요하지만, 현재 상황을 명쾌하게 보여주는 역할은 충분해 보인다.

이윤미 기자/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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