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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수화가 석창우 "두 팔이 있을 때보다 더 재밌게 살아요"
"저는 두 팔이 없기 때문일까요? 스포츠스타들의 역동적인 모습을 보면 전율이 납니다. 대리만족을 느끼죠. 그래서 요즘 스포츠 선수들의 활약상을 집중적으로 그리고 있답니다".

의수(義手)화가 석창우 씨(56. 사진)가 ‘2011대구세계육상대회’ 기간에 맞춰 오는 26일부터 서울 신사동 청작화랑(대표 손성례)에서 개인전을 갖는다. 어느새 서른번 째 개인전이다. 이번 전시에는 사이클, 육상 등 스포츠 경기장면을 그린 작품을 포함, 총 30여점이 나온다. 석 씨는 작품성을 인정받아 대구육상대회 프로그램 책자에 작품 2점이 실릴 예정이며, 부채에 육상경기 모습을 그려넣은 ‘아트부채’ 5만점도 제작했다.

석 씨가 화선지에 먹으로 속도감있게 그린 그림에선 역동적인 에너지가 뿜어져 나온다. 바람을 가르며 힘차게 페달을 밟는 사이클 선수들이며, 마지막 힘까지 뽑아내며 질주하는 육상선수들의 모습을 표현한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장애인 화가의 그림이라곤 믿기지 않는다. 힘과 긴장감이 팽팽하기 때문. 하지만 석 씨는 사고로 두 팔을 잃고, 쇠갈고리에 붓을 끼워 드로잉하는 장애인 작가다.


그의 나이 스물아홉, 둘째 아들이 막 태어났을 무렵인 1984년 석 씨는 구로공단의 한 의류공장에서 일하다 2만2000볼트의 고압전류에 감전돼 두 팔을 잃었다. 당시 그는 명지대를 나온, 잘 나가던 전기 엔지니어였다.

"살아난 게 기적입니다. 중환자실에 꼬박 1년반 입원하며 머리 수술 등 온갖 수술을 13번이나 했죠. 그렇게 목숨을 건진 후 4년이 지난 어느 날, 네살배기 아들이 ‘아빠, 그림 좀 그려줘’라며 조르는 거예요. 큰 딸에겐 그런대로 아빠 노릇을 했는데 둘째인 아들에겐 (사고 때문에) 해준 게 아무 것도 없어 의수에 펜을 끼워 참새, 까치를 그려줬죠. 근데 주위에서 그 그림이 좋다고 입을 모으더라고요".


남편의 감춰졌던 재능을 알아챈 부인 곽혜숙(51) 씨가 "다른 일이란 일체 걱정말고, 그림을 그려보라"고 독려하자 그는 서예, 드로잉,이론을 반(半) 독학으로 배워가며 화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한지에 먹을 듬뿍 묻혀 빠른 필치로 크로키 작업을 하는 그는 한문서예, 한글, 전각, 사군자, 현대서예를 섭렵한 후, 누드크로키를 접하면서 크로키와 서예를 접목한 ‘ 필묵 크로키’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석 씨는 "누드 크로키 작업을 수년째 하던 중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 여자 피겨스케이팅 부문에 출전한 미셸 콴의 경기에 빨려들고 말았습니다. 누드 모델에게선 나올 수 없는 절묘한 포즈와 선이 막 나오더라고요. 그 후로 스포츠스타를 즐겨 그리게 됐죠“라며 "박찬호, 김연아 등을 그리고 있는데 생생한 역동성이 매력"이라고 밝혔다. 또 걸그룹 ‘소녀시대’의 공연장면도 그리곤 한다. 


두 팔과 발가락 일부까지 잃은 장애인으로, 실생활과 작업에서 불편함이 많을 테지만 석 씨 부부는 의외로 밝은 모습이었다. 심지어 "두 팔이 있었던 30년 보다, 팔 없이 사는 지금이 더 재미있다"고 되뇔 정도다. 좌절과 절망을 딛고, 예술과 만나 그림 속에 푹 빠져 사는 그는 ‘그 어떤 삶이든, 삶은 진정 살아볼만한 것’이라고 외치는 듯하다.

석 씨는 선수들의 경기장면을 지속적으로 살핀 후 이를 빠른 붓질로 속도감있게 표현한다. 최근 즐겨 그리는 사이클 장면도 6개월간 경륜장을 찾아 박진감 넘치는 경기와 동작을 끈질기게 관찰한 후 작업했다. 그의 사이클 그림은 사이클의 둥근 원과, 납작하게 엎드린 선수들의 모습이 일체감을 이루며 화면에 다이나믹한 리듬을 선사한다.

국내 전시 외에도 석 씨는 미국, 프랑스, 독일, 영국, 중국 등 해외에서 10차례개인전을 가졌으며, 지난 달에는 ‘자랑스런 한국장애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8월 28일 오후 6시에는 전시장에서 작품제작 시연도 갖는다. 전시는 오는 9월 8일까지. 02-549-3112

이영란 선임기자/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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