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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D의 도자기를 2D 평면으로 재현한 이승희의 실험
삼성 리움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국보 219호 ‘청화백자 매죽문호’(높이 41㎝)는 조선 전반기를 대표하는 명품 청화백자다. 화려한 연판문 사이로 매화와 대나무가 섬세하게 그려진 이 백자는 당당하면서도 유연한 형태, 맑고 기품있는 담청색 백자태토, 뛰어난 문양표현 등이 가히 일품이다.

도자작가 이승희(53)는 이 걸작 도자기를 평면에 구현했다. 미술관에 가야 볼 수 있는 백자 항아리를 평면에 납작하게 도자기 기법으로 재현했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은다. 명품 백자가 이승희의 화폭에서 평면 작품으로 다시 태어나 감상자와 만나게 된 것. 이는 지금껏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실험이란 점에서 주목된다.

이승희 작가는 지난 2008년부터 중국 최고(最古)의 ‘도자기 도시’인 장시성(江西省) 징더전(景德鎭)에 머물며, 유명 박물관,미술관의 걸작 도자기들을 평면회화로 재현하는 작업에 몰두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정통 도자기법으로 도자기를 평면화하는데 성공했다. 특히 도자기법으로는 최초로 가로 2m에 달하는 평면 회화를 선보여. 이제 ‘도자기법이 평면회화의 어엿한 한 기법’임을 제시하고 있다. 통상적으로 도자기로 납작한 평판을 만들 때 크기가 1m가 넘으면 가마에서 휘거나 비틀어지는게 다반사다. 습도나 온도가 조금만 맞지 않아도 뒤틀리거나 깨지게 마련이다. 


그가 그간의 결실을 모아 ‘厚.我.有 후.아.유’라는 타이틀로 서울 통의동 아트사이드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다. 전시에는 전통적인 입체 도자기를 평면화시켜 고전과 현대의 시간차를 압축시킨 평면작품들이 다양하게 나왔다. 그의 단순하면서도 명료한 도자기 평면회화는 이미 뉴욕과 홍콩아트페어에 출품돼 큰 관심을 모은바 있다.

이승희는 청주대에서 도예를 전공하고 도자기를 빚어왔다. 그러다 일본서 열릴 전시에 자신의 도자기를 보내려던 어느날 불현듯 ‘입체도자기가 아니라, 평면 도자회화는 안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그는 본래 입체였던 도자기를 평면으로 옮기기 위해 베이징에서 자동차로 23시간 거리인 징더전(景德鎭)에 틀어박혀 온갖 구상과 실험을 거듭했다. 그러나 3D 형상을 2D로 전환하는 것은 생각처럼 간단치 않았다. 게다가 단순히 입체를 평면으로 구현하는 것만의 문제도 아니었다. ’실용과 예술의 집합체’인 도자기를 자신의 조형성을 살린 ’예술적 평면회화’로 전환해야 했기 때문이다.

작가는 판 자체까지 도자기로 구워내 흙과 유약의 차이를 한 화폭에서 대비시켰다. 즉 전통적인 도자기법을 이용해 도자기로 사각의 넓은 판(캔버스)을 만든 후 그 중심에 60~70회씩 흙물을 연속적으로 발라 도톰한 평판을 만들었다. 그리곤 그 표면에 안료로 그림을 그리고, 유약을 발라 구워 ‘평면 도자기’를 탄생시켰다. 배경 부분은 유약을 바르지않고 구워 흙의 질감을 그대로 살렸고, 주인공(?)인 도자기 부분은 유약을 발라 고전 도자기를 그대로 재현해낸 것. 따라서 자연스럽게 도자기가 도드라져 보이면서 배경과 중심이 대비를 이룬다. 작가는 평면화한 도자기에서 입체감이 살짝 느껴지도록 그림을 원근감있게 그려넣었다.


작가는 "입체인 도자기를 평면화했음을 누구나 알 수 있도록 주로 유명 도자기를 골라 재현했다"며 “내 작업은 일종의 릴리프로, 도자기만도 아니고 회화만도 아니다. 그 둘이 결합된 독특한 현대미술을 실현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승희의 작품들은 산뜻한 긴장감을 전해준다. 흙물을 수없이 덧발라 그 레이어로 탄생한 세라믹 회화는 ’불과 노동력이 공동으로 만들어낸 일종의 싱크로나이징’이다. 단정하면서도 모던하게 재현된 화면 속 도자기들은 명징한 정서를 뿜어낸다. 또 도예가의 상상력을 화가의 그것으로 구현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미세한 형태적 오차는 오히려 도자기의 우연성을 느끼게 하는 디테일이 되고 있다.

김백균 중앙대 교수는 "이승희의 작업은 하얀 태도 위에서 가장 간략한 방식으로 가장 원초적인 반복의 유희를 통해 우리를 미묘하고 알 수 없는 긴장의 세계로 인도한다"고 평했다.

작가는 백자 달항아리나 청화백자 등 평면으로 재현된 도자기를 선보이는 것 외에, 앞으로 유약을 이용해 다양한 무늬와 평판작업을 시도함으로써 유약의 독특한 색감을 보여주고 싶다고 소망을 피력했다. 전시는 8월 14일까지. 02-725-1020.

이영란 선임기자/ 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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