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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간을 사유하는 작가 김인겸..그 ‘Space-less’의 세계
김인겸(66)은 조각가이면서도 ‘조각적인 것’을 부단히 버려온 작가다. 그의 조각은 평면작품처럼 납작해 조각에 대한 대중의 고정관념을 부순다. 조각하면 으레 묵직한 중량감이 기본이건만 김인겸의 매끈하고 미니멀한 큐브형 조각은 이를 거부한다. 게다가 주로 검은빛으로 이뤄진 표면 또한 그 존재감을 무위로 돌려놓는 듯 심상치 않다.

이처럼 전통조각의 특성을 거부해온 작가 김인겸이 작가 생활 40년을 정리하는 중간결산전을 연다. 김인겸은 ‘Space-less’라는 타이틀로 오는 24일까지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작품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작가의 40여년의 작업과 평론, 글을 망라한 작품집 ‘KIM IN KYUM’의 발간을 기념하는 전시로, 그간의 작업세계를 되짚어본 자리다.

김인겸은 1995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대표작가로 선정돼 개념적인 ‘프로젝트’ 작업을 선보였고, 이듬해 한국 작가로는 최초로 파리 퐁피두센터 아틀리에 입주작가로 초대되는 등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활동해왔다. 전시에는 근작 ‘Space-less’ (조각)시리즈와 드로잉 등 20여점이 나왔다.

김인겸의 트레이드 마크인 ‘Space-less’ 연작은 묵직한 스테인리스스틸을 주재료로 하고 있음에도 기존 조각의 육중함을 벗어던진 채 마치 얇은 종이를 접어 만든 것처럼 가볍게 느껴진다. 검은색, 또는 자줏빛으로 도장된 조각들은 두께가 9~18㎝ 안팎으로 납작해 보는 각도에 따라 평면으로도, 입체로도 보인다. 이런 착시현상을 통해 그의 작품은 공간으로부터 자유로운, 즉 ‘공간 없음(space-less)’의 상태를 보여준다. 평면과 입체, 실체와 허구의 경계를 가뿐히 넘나들며 지금껏 우리가 경험하지 못했던 초(超) 공간적 세계, 즉 ‘무위의 경지’를 제시하는 것.


작가는 “나의 근작 ‘Space-less’시리즈는 90년대 말부터 시도했던 ‘빈 공간’시리즈의 ‘조형의 영혼성 개념’을 더욱 구체화시킨 것”이라며 “요즘 나는 ‘조각같지 않은 조각’에서 ‘조각을 떠난 조각’으로 이동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이렇듯 그는 가장 물질적인 장르인 조각을 가장 정신적인 장르로 변신시키기 위해 진력하고 있다.

또 “내 작품의 줄기를 살펴보면 언제나 없는 곳에선 있는 곳으로, 있는 곳에선 없는 곳으로 갔었다. 늘 반대급부에서 해법을 찾았다. 이는 타고난 저항성 때문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김인겸의 조각이 선(線)보다 면(面)이 강조되는 것은 그의 드로잉 작업 때문이다. 1996년 파리생활 초기, 작가는 본격적인 조각작업을 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스펀지나 고무판으로 드로잉에 몰두했다. 고무판에 잉크를 묻힌 다음 종이를 훑어감으로써 넓은 면을 조성했다. 이 작업은 ‘Space-less’ 조각의 출현을 촉발하기에 이른다.

책 발간을 위해 초기작부터 근작까지, 그간의 작업을 정리한 김인겸은 “예술이란 스승을 만나 어느 새 40년을 지냈다. 그는 있는 듯 없었고, 없는 듯 있었다. 그는 무한이었고, 영원이자 초월이었다”며 “무채색으로 내 몸을 줄이고, 그 무한의 질서 속에서 나도 같이 있었다”고 토로했다. 전시는 7월 24일까지. (02)720-1020

사진=스테인리스 스틸에 검은 물감을 입힌 김인겸의 조각 ‘Space-less’. 큐브형의 미니멀한 조각은 입체인지 평면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납작하다. 입체적 감각을 평면적으로 해석함으로써 ‘무위의 상태’를 구현했다. [사진제공:가나아트]

이영란 선임기자/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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