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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石佛의 장엄함에 번뇌도 숨죽이다
400여년간 갈고 닦은 2300개의 석굴과 10만 불상

천개의 절망은 가고 덩그러니 남은 비로자나불이 이방인을 반기는데


뤄양의 ‘용문석굴’ 불교예술 총아·조각미술 집합체로 명성

2000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

허난성 성도 정저우 인근엔 中 무술 총본산 소림사가

영태사서 먹는 정갈한 사찰 음식도 일품
5세기 말부터 400년에 걸쳐 완성된 중국 뤄양의 용문(龍門)석굴. 중국 불교미술의 웅장함과 정교함을 만끽할 수 있는 곳으로, 지난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2345개의 크고 작은 석굴에 10만여점의 불상이 새겨져 장관을 이룬다. 가장 큰 것은 봉선사의 비로자나불(사진 왼쪽 끝)로 높이가 17.14m에 이른다. 반면 2㎝ 안팎의 초미니 불상 1만5000점을 새긴 ‘만불동’도 있다.                                                 [ 사진=이영란 선임기자/ yrlee@heraldcorp.com]

지금과 같은 특수장비가 없던 시절, 까마득하게 높은 절벽에 매달려 큰 굴을 파고, 세밀하기 이를 데 없는 불상을 새긴 투혼에 여행자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불상은 10여m가 넘는 것부터 2~3㎝ 손톱 크기에 불과한 것까지 실로 다양하다. 더구나 제각기 다른 표정과 조형미를 보여줘 감탄사가 연발된다. 그 양식은 갸름하고 처진 어깨에 목이 길어 유연하다.

용문석굴 중 가장 유명한 불상은 당(唐) 고종 때 시작돼 황후 무씨(後의 ‘측천무후’)가 주도한 봉선사(奉善寺)의 거대 불상군이다. 이를 보지 않고는 용문석굴을 봤다고 할 수 없다고 할 만큼 단연 압권이다. 특히 폭 35m 석굴 안에 있는 대불(비로자나불)은 높이가 17.4m에 이르며 귀 길이만도 1.9m나 된다.

675년에 완성돼 절정기의 극치를 보여주는 이 불상은 수려한 용모에, 인자한 미소가 인상적이다. 거액의 자금을 대며 각별한 애정을 보였던 측천무후를 모델로 했다는 설이 전해진다. 그러나 학자들은 “시기가 맞지 않으며 여러 근거에서 그저 호사가들이 지어낸 이야기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

한편 고양둥(古陽洞)은 가장 오래된 동굴이자 예술적 가치가 높은 동굴로 유명하다. 길이 10m가 넘는 대형 석굴의 천장과 벽면에 불상이 수도 없이 새겨져 있는데 하나같이 예술적으로 빼어나다. 빈양삼동(賓陽三洞)은 북위 때 총 80만명에 달하는 인력을 투입해 24년에 걸쳐 조각했으며 내부에 11개 대형 불상이 모셔져 있다.

다만 불상들이 오랜 세월 방치되면서 훼손된 부분이 많아 안타깝다. 불상머리를 소장하면 복이 온다는 미신 때문에 머리가 떨어져나간 불상이 많다. 또 도굴단에 의한 불법 반출, 문화혁명 당시 홍위병에 의한 파손 흔적도 뚜렷하다.

▶쿵후로 유명한 소림사, 중국 최고(最古)의 사찰 백마사=허난 성의 성도(省都)인 정저우는 중국 최초의 왕조인 은나라 도읍이 있던 역사 도시다. 게다가 중국 오악(五岳) 중 하나인 숭산(嵩山)이 가깝다.

정저우 시내에서 자동차로 2시간 거리인 덩평현 숭산 자락에 세워진 소림사(少林寺)는 527년 인도 승려 달마가 선종(禪宗)을 개창한 유명 사찰이다. 역대 소림사 승려들의 사리가 모셔진 ‘탑림’과 고승 혜가가 수행했던 ‘이조암’이 있다.

소림사는 중국 무술의 총본산으로 특히 유명하다. 소림사 입구에는 무려 70여곳의 무술학교가 세워져 성업 중이다. 그러나 소림사 입장료(120위안) 외에, 30위안을 더 내고 관람하는 무술쇼는 어린 수련생들이 펼치는 다소 조악한 공연이다.

한편 뤄양에서 20분 거리인 백마사도 둘러봄 직하다. 중국 최초의 불교 사찰로, 후한 때인 68년에 창건됐다. 백마사라는 이름은 중국에 처음 불교를 전파한 두 인도 스님이 경전을 백마의 등에 싣고 왔기 때문에 지어졌다. 절 동쪽에는 1175년 창건된 높이 24m, 13층 규모의 석탑 제운탑이 여행객을 맞는다.


▶가는 길과 숙박, 음식
=정저우, 뤄양은 한국에서 직항노선이 2년 전 개설돼 오가기 편리하다. 인천~정저우 간 직항편의 소요시간은 2시간20분. 시차는 1시간. 한국이 1시간 빠르다. 정저우와 뤄양은 대도시여서 특급호텔 등 깨끗한 숙소들이 많다. 먹을거리도 풍부하고, 베이징 상하이에 비해 저렴하다. 특히 소림사 인근의 중국 최초의 비구니사찰 영태사(永泰寺)에서 내놓는 사찰음식은 맛이 깔끔하고 담백하다. 

yrlee@heraldcorp.com






허난성의 또 다른 볼거리

천년사찰 ‘정거사’서 ‘동파茶’ 한 잔

소동파의 시구절 아련히 들리는 듯…


중국 허난 성에서 여행객들로 북적이는 유명 관광지 말고, 운치 있는 곳을 꼽자면 대소산 정거사(淨居寺)가 제격이다. 천년 사찰의 고즈넉함에 빠져들 수 있는 데다 중국 내에서 ‘10대 명차’로 꼽히는 ‘신양(信陽)녹차’, 일명 ‘동파차’의 집산지여서 질 좋은 녹차를 마음껏 마시며 맛깔 난 음식을 즐길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특히 이곳은 메기탕과 산나물 요리 등 웰빙요리로도 유명하다.

정거사는 허난 성 신양에서 서남쪽으로 약 25㎞ 떨어진 대소산(大蘇山)에 위치한 사찰이다. 남북조 시대의 명승 혜사(515~577)가 암자를 짓고, 수행하며 제자들을 교화한 곳으로 전해진다. 특히 천태종의 창시자인 천태 대사(538~597년)가 스승 혜사 대사로부터 법화삼매를 깨달은 천태종 도량이어서 불심 깊은 신도들에겐 성지로 꼽힌다.

정거사는 한때 승려 수가 1000여명이 넘었고, 승방이 1000여칸이나 됐다고 한다. 수차례에 걸쳐 재난을 만나 훼손과 중건을 거쳤으나 중요한 가치가 있는 문화재와 고적들이 다수 남아 있다. 때문에 중국 정부도 정거사 일대를 성급(城級) 문화재 보존지구이자, 여행지구로 지정하고 개발 및 복구를 서두르고 있다.

1400여년 역사의 이 절은 선당, 법당, 방장실 등 청대 고건물 59칸이 전해진다. 중심건물인 대웅보전(대불전)은 청대 건축양식으로, 30개에 달하는 둥근 기둥이 독특하다. 지붕을 덮은 기와는 실내에서 훤히 보인다. 돌계단은 명대 양식을 그대로 취하고 있다.

절 앞으론 너른 호수가 펼쳐져 있다. 예로부터 전해져오는 ‘정거산도’에는 대웅전 뒤편에 탑이 있었고, 사찰 뒷자락 대소산에는 많은 부속 암자들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정거사만이 남아 있다. 사찰 또한 스님이 머물지 않아 고즈넉하다 못해, 쇠락의 기운마저 감돈다.

정거사의 녹차 또한 천년 사찰처럼 역사가 깊다. 6세기 중반 혜사 대사가 암자를 지은 후, 벽산에 차를 심었다고 전해지니 말이다. 현재 이곳 다원에는 청대에 심은 차나무가 600여 그루나 남아 있다. ‘적벽부’로 유명한 북송의 시인 소동파(蘇東坡ㆍ1037~1101년)도 이곳 암자에서 선사들과 차를 마시며 선담을 나누었다고 전해진다. 

이영란 선임기자/yrlee@heraldcorp.com




[뤄양=이영란 선임기자] 탐스러운 붉은 꽃잎의 모란으로 유명한 뤄양(洛陽)은 중국 허난(河南)성의 대표적인 고도다. 기원전 770년 주나라를 시작으로 후한, 위, 수 등 무려 9개 왕조가 이곳을 도읍으로, 흥망성쇠를 이어갔다. 소설 삼국지에서도 후한 말기 뤄양이 무대로 그려졌다. 삼국지의 영웅 관우의 묘도 이곳에 모셔져 있다. 그러나 뤄양의 최대 볼거리는 장대한 용문(龍門)석굴이다. 뤄양을 찾는 이들은 이 엄청난 스케일의 석굴을 보기 위해 몰려든다.

▶용문석굴-암벽에 새긴 10만점의 불상=뤄양에서 남쪽으로 약 13㎞를 달리면 너른 이하(伊河) 강변의 암벽을 따라 양측에 벌집 같은 거대한 석굴이 눈에 들어온다. 그 유명한 용문석굴이다. 둔황 막고굴, 다통 운강석굴과 함께 ‘중국 3대 석굴’로 꼽히는 이 석굴은 명성에 걸맞게 엄청난 위용을 자랑한다. 불교예술의 총아일 뿐 아니라 빼어난 건축, 조각미술의 집합체다. 유네스코는 2000년 이 석굴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했다.

이하 강변 좌우의 용문산과 향산(香山) 암벽에 1.5㎞에 걸쳐 조성된 용문석굴은 5세기 말(북위)부터 당나라 때인 9세기까지 무려 400여년간 깎고 다듬으며 세워졌다. 그 결과 2300여개의 석굴과 벽감(壁龕)이 조성됐다. 석굴 내부엔 총 10만점의 불상과 50여개의 탑이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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