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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여진, 김제동, 박혜경 공통점?
세상을 향한 알싸한 프러포즈 '일인시위'

<세상을 향한 알싸한 프러포즈 일인시위>(헤르츠 나인.2011.6)는 일인시위의 역사에 관한 책이다. 두 명 이상은 단체로 규정되기 때문에 일인이 하는 시위로 자리잡은 것이다.


미친 듯 최루탄이 터진다. 빠르게 뛰는 다리 사이로 파편이 흩어지고, 화염병이 난무한다. 거리는 매캐한 연기와 부서진 벽돌, 짱돌들로 가득하다. 수시로 외치는 구호가 절박하다. 1980년대 익숙한 시위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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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이 글은 교원 임용정원 사전예고제를 이끌어냈던 차영란씨 피켓에 씌여진 일인시위용 주장글이다. 시위의 형태나 방법은 변화했지만, 절실함이라는 공통점은 여전하다.


집필진 ‘사이시옷’은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마저 사랑하게 만들고 싶다는 작은 소망에서 출발한 모임이다. 20대 중반에서 30대 초반 청년들 오주원, 박종수, 신미경, 윤선미, 박현이, 이한나, 이혜지가 참여하고 있다.


책에는 여덟 가지 일인시위자들의 사연과 요구사항이 나온다.


삼성의 변칙증여 심판을 요구하며 국세청에 맞선 윤종훈씨, 두발자유를 위해 학내 일인시위를 한 중학생 클린앤, 반값 등록금 실행을 요구하며 G20 정상회의에 뛰어든 어청수씨, 일에 지쳐 자살한 삼성 직원 고 김주현의 아버지 김명복씨...


이들은 왜 혼자서라도 시위에 나서야 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큰일이냐’, ‘사소한 일이냐’는 개인의 판단에 있지만 피켓을 드는 순간 공론화의 첫 단계를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순응과 적응의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는 사람들이다.


연봉 4~5억원의 삼일회계법인을 때려친 윤종훈씨는 지금 중국집을 운영한다. 하지만 기업의 탈세와 이중장부를 눈감아주는 대가로 받은 돈으로는 도저히 행복할 수 없는 ‘팔자’라고 했다.


힘도 없는 주제에 왜 홀로 중뿔나게 나서냐고? 그래 봤자 계란으로 바위치기일 뿐이라고? 과연 그럴까? 잡초를 없앨 수 없기에 이성으로는 비관할 수 밖에 없는 세상이지만, 그런 잡초를 뽑아낼 수 있기에 의지로는 낙관할 수 있는 게 또한 우리 세상이다. 정의와 민주주의에 힘이 없기 때문에 그것들을 위해 싸울 가치가 있는 것이며 그 때문에 이 세상이 아름다울 수 있고 또 살 만한 가치가 있는지 모른다. 아무리 무력해 보이는 일인시위일지라도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이다.(10쪽)


경찰은 한진중공업과 반값 등록금 시위에 참여한 배우 김여진을 집회 및 시위에 대한 법률 위반으로 출석요구서를 발부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렇게 주장한다.


“그저 생긴 대로 말합니다. 굽히지 않고 말합니다. 나직이 속삭여도 다 들릴 것을 믿습니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각양각색의 목소리를 다 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소리가 어우러져 우리 사는 세상이 반짝반짝 빛났으면 좋겠습니다.”과연 그녀는 불온한 생각을 갖고 있는가. 이외에도 김제동, 박혜경씨와 더불어 영향력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


홍세화씨는, ‘일인시위는 세상 앞에 홀로서는 작업이며, 용기있게 나설 때 자기성찰과 자아가 확장됨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15쪽) 지난 4월 정독도서관에서 강의를 마치고 나오던 그가 기억난다. 책에서 본 인상보다 키가 컸고 자유롭고 부드러우며 아름다웠다. 내가 내민 수첩에 싸인해 주던 필체마저도 단정했다. 잘 살아온 사람만이 풍길 수 있는 정갈함과 향기가 있었다.


오직 한 가지‘무관심을 깨치고자’는 목적으로 펴낸 이 책이 제 몫을 다하기를 기원한다. 여기에 우리의 힘을 보태는 방법이 있다. 거리를 걷다가 일인시위자를 만나면 조용히 앞에 서서 그가 하는 소중한 한마디 말을 읽어 보는 것이다. 그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이 나일수도 있다는 겸손함으로...

 

[북데일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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