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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쉼-공연>최태지의 속살같은 가족..두 딸,이혼,놓지못한 발레의 운명
가족은 속살 같다. 잘 드러나지 않아 부드럽고도 연약한 속살.

평생을 예술가로 살아온 최태지 단장에게 가족은 온갖 복잡한 감정이 교차되는 존재다. 가족만큼 그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게 있을까. 깔깔깔 웃다가도 가족 이야기가 나오면 말을 아낀다.

예술가로서 이토록 찬란한 길을 걸어왔기에, 그의 가정은 보통사람의 평범한 그것과는 많이 달랐다.

사랑에 잘 빠지는 여인. 아름답고 열정적인 가슴을 지닌 예술가. 그의 예술적 재능과 결혼생활은 애초에 어울릴 수 없는 조합이었는지도 모른다.

두 딸을 향한 애정은 남달랐다. 뭇 어머니들처럼 아이들에게 헌신적인 사랑을 주지 못했다는 것은 늘 마음의 짐이다.

“집에서 둘째아이를 바랐을 때, 눈물을 흘리며 발레단에 사표를 던졌어요. 산부인과에 가서 아이를 갖겠다고 말하면서도 울었죠. 곧바로 둘째를 가졌고, 그렇게 발레로부터 도망갔어요. 발레리나가 아이를 둘씩이나 낳고, 발레를 할 수는 없을 때였으니까. 발레냐, 아이냐. 둘 중 하나를 택한 셈이죠.”

하지만 그는 운명적인 이끌림으로 아이 둘을 낳고도 발레를 놓지 못했다. 평생 도망가려 했던 발레로부터, 결정적인 순간에는 벗어날 수 없었다. 그는 “마지막까지 발레를 포기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이 받은 상처는 필연적이었다. 발레에 푹 빠져 있는 엄마. 또래 친구들이 받는 관심의 절반도 못 받는 아이들은 엄마를 넘어 발레까지 미워했다. 두 딸은 “나는 이다음에 결혼하면 아이 옆에 있어줄 거야”라고 말할 정도로 애정을 갈구했다. 엄마는 아직도 그 대목이 가슴 아프고 미안하다.

“항상 가정이 최고라고 말하면서도 마음속에는 늘 발레가 있었다는 거. 아이들은 다 알았겠죠. 제가 사랑하는 발레로 인해 가장 가까운 가족들을 피눈물 흘리게 했다는 게 마음 아파요. 전 이기적인 여자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어쩔 수 없는 예술가의 이기성이 있었던 거죠.”


그럼에도 첫딸 최리나는 엄마의 길을 물려받았다. 리나는 얼마 전까지 러시아 보리스에이프만의 프리마로 활동한 실력파 무용수다. 예술적 재능이 남달랐던 둘째딸 세나는 발레를 접고 현재 뉴욕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있다. 첫 남편과 이혼 후 혼자 살던 최 단장은 2004년 재혼해 또 다른 삶을 꾸려가는 중이다.

조민선 기자/bonjod@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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