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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약같은 ‘할인’…지구촌 병들게 한다
저임금·값싼 에너지·컨테이너 운송시스템에 의해 유지

유독물질 함유 불량제품·탄소배출 증가 등 필연적 초래

성장없는 소비경제 탈피…지속 가능한 생산·소비 만들어야

“다섯, 넷, 셋, 둘, 하나!”새벽 5시, 초읽기와 함께 파란색과 흰색으로 된 그린 에이커스의 월마트 간판 밑에 있는 출입문이 빼꼼 열렸다. 그 순간 사람들이 한꺼번에 앞으로 쏟아져 들어가며 문 한 짝이 떨어져 나갔다. 한 안전요원이 떨어진 문짝을 방패 삼아 매장 안으로 몰려드는 사람들의 기세로부터 몸을 보호하려 애썼다. 문짝은 부서졌고 유리는 산산조각이 났다. 2000명이 넘는 광분한 쇼핑객이 월마트 안으로 밀려들어 왔다. 쇼핑객과 직원들이 넘어지기 시작했다.”

2008년 11월 미국 뉴욕 롱아일랜드 그린 에이커스 월마트 매장에서 새벽에 벌어진 광경이다. 금융위기로 가정경제가 흔들리고 미래에 대한 불안이 커지던 때에 50~70% 할인이라는 월마트 광고전단은 사람들의 생존본능을 자극했다.

이는 낯선 풍경이 아니다. 롯데마트 통큰 치킨 앞에 선 줄과 옥신각신이 어제 일이다. 지금도 ‘통큰~’‘더 큰~’‘착한~’이란 수식어를 단 세일은 계속된다. 파격 세일을 내세운 소셜커머스도 성황이다.

오늘날 쇼핑객들은 ‘매일 낮은 가격’을 표준으로 받아들인다. 할인공학의 함정이다. 값싼 물건을 당연한 것으로 기대하는 것이다.

저널리스트 고든 레어드는 월마트, 라스베이거스로 상징되는 할인 경제와 서비스경제의 안과 밖, 과거와 현재를 꼼꼼히 살펴나가면서 이런 값싼 물건이 가져다주는 서비스경제가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제 황금시대는 종말을 고하고 있다는 것이다

레어드는 값싼 노동력, 컨테이너 운송시스템, 글로벌 인적자원 등을 집중적으로 분석해 나간다.

무엇보다 값싼 물건은 최적화된 글로벌 네트워크, 즉 중국이나 동남아 등지의 값싼 노동력, 에너지, 운송 시스템에 의해 유지돼 왔는데 한계에 도달했다. 중국의 노동자들은 저임금과 열악한 환경을 내세우기 시작했다. 불량품과 유독물질 함유 제품 등은 저가 상품에 대한 불신을 낳고 있다. 값싼 에너지 역시 더 이상 유지되기 힘든 처지다. 운송시스템도 불안하다. 선박과 트럭이 만들어내는 오염과 물량의 폭주로 위험품목을 다 걸러내지 못하는 검역시스템 등은 미래 위험, 비용을 담보하고 있다. 기후변화나 만성적인 빈곤 같은 문제들도 값싼 물건의 공급망에 위협이 된다.

그러나 소비경제, 서비스경제의 딜레마는 가계의 부가 침식되고 개인 빚이 막대하게 쌓이는 것이 단지 경제 위기의 징후가 아니라 성장자체의 본질이라는 데 있다.

지금까지 발전은 빠른 성장, 값싼 제품, 높은 신용한도로 씀씀이가 큰 쇼핑객이라는 게 지배적 시각이었다, 이것이 근본적으로 1990년대와 2000년대 초의 글로벌 경제 거품을 만들어냈다. 우리는 도박꾼처럼 이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다고 잘못 생각했다. 이제 시스템 가운데 일부가 실패하기 시작했는데도 여전히 이런 도박은 진행 중이라는 게 레어드의 지적이다.

그렇다고 저자가 대책 없는 탈세계화를 주장하는 건 아니다. 급격한 탈세계화는 국가의 실패를 낳을 수 있고, 빈곤의 증가, 극우 배타주의 운동의 발흥을 부추길 수 있다. 온실가스 배출 감축을 위한 협력이 줄어들 염려도 고려해야 한다.

저자는 세계 경제와 공급망의 올바른 회복을 위해 필요한 정책을 제안한다.

무엇보다 물류와 교통기반 시설에 대한 공공투자나 비전통적 원유개발에 대한 세금감면 등의 명백한 보조금 혜택뿐 아니라 값싼 물과 탄소, 깨끗한 공기같은 다양한 공공재를 이용하는 데 대한 암묵적 혜택을 탄소세 등을 통해 거둬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또 무분별한 금융 서비스 규제, 에너지 효율성 제고, 재생 가능한 에너지에 대한 인센티브 등 장기적인 정책 목표를 세우고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해 지출 재원을 보존해야 한다. 무역도 공공의 안전과 인권, 환경, 국가 정책과 떨어질 수 없음을 인식해야 하며 전자제품과 가구 따위의 값은 내려가는데 교육과 건강비용, 주택가격은 점점 비싸지는 세계화의 역설적 상황을 지역화 해법을 통해 해소하고 안정적인 소득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한다. 세계화의 폐해를 해결하기 위한 국제적 차원의 협력은 필수다.

저자는 이런 방법들을 통해 값싼 물건의 진정한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야말로 성장 없는 소비경제에서 벗어나 생산과 소비의 지속가능한 순환구조를 만들어내는 길이라고 역설한다.

저자의 예리한 눈은 값싼 물건으로 흥청망청했던 세계화의 정점의 시기에 지정학적 권력의 이동이 시작됐음을 간과하지 않는다. 중국은 수출의존적 성장 모델을 당분간 유지할 것이나 어느 시점에 서구 분리가 이뤄질 가능성을 점친다. 단기적으로 건실한 성장을 위해, 국내문제를 치유하는 데 충분한 기간 동안 값싼 물건에 기반한 세계화를 유지하기 위해 미국 통화자산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만약 중국과 대만 한국을 비롯한 신흥경제국들이 서구의 파산한 시장과 성공적으로 분리할 수 있다면, 가난한 노동 시장의 이용도 줄어들 것이다.”

이미 이런 변화는 시작됐다. 월마트를 따라 값싼 상품의 네트워크를 밟고 있는 이들을 위한 위험 신호이자 차선변경 사인이다.

가격파괴의 저주/고든 레어드 지음, 박병수 옮김/민음사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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