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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술 간 장르를 허물다”…하이브리드 장르 봇물
무대 위의 몸짓이 스크린으로 옮겨가고, 영화 미학이 발레의 아름다운 선과 만났다. 평면 위의 회화가 살아있는 무대로 뛰어 들어왔다. 오페라를 보며 미술 작품을 읽고, 무대 위에선 야외극에서나 볼 수 있는 물 튀기는 난장이 펼쳐진다.

최근 공연계는 연극 영화 무용 오페라 회화 등 서로 다른 장르를 결합한 하이브리드(hybrid) 공연이 봇물을 이룬다. 무대, 회화, 영상 예술 할 것 없이 장르의 테두리를 훌쩍 뛰어넘는다. 전통과 현대의 만남, 동양과 서양의 만남과 같은 인위적인 조합에서 벗어나, 보다 자연스러운 어울림 속에 예술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

▶총체극 ‘화선, 김홍도’= ‘화선, 김홍도’는 특정 장르로 국한할 수 없는 총체극이다. 노래와 춤, 음악과 연극, 그리고 평면 예술로 인식되는 회화를 무대 위로 끌어왔다. 

가장 한국적인 정신을 담아낸 화가로 평가받는 단원 김홍도의 그림을 무대 위에 펼쳐보이면서 무대 예술의 가능성을 실험한다. 무동, 씨름, 나룻배 등 김홍도의 풍속화가 대거 등장한다. 박제된 회화 속 꽃, 사람, 나비에 숨결을 불어넣고, 그림 안팎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단원의 그림이 어떻게 무대 위에서 살아 움직이는지가 관전 포인트. 이번 작품에선 그림이 배경이 아닌 주인공이다. 배우들은 천연덕스럽게 그림의 안과 밖을 오간다. 손진책 연출가는 “인간의 몸 못지않게 살아있는 그림을 시각화해서 보여주는게 관건이다. ‘그림이 살아움직이네?’하며 신기하게 느낄 만한 장면들이 등장한다. 특히 그림 속에서 두 사람이 홍도를 찾아 씨름터, 나루터, 장터 등을 찾아가는 장면은 마치 김홍도의 풍속 화첩을 넘기는 듯 한 폭 한 폭 그림 같은 정경으로 펼쳐진다”고 설명했다. 7월 8~16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창작 판소리 ‘억척가’=소리꾼 이자람의 판소리 ‘억척가’도 자유분방한 장르 융합의 결과물이다. 2007년 브레히트의 ‘사천의 선인’을 재해석한 창작 판소리 ‘사천가’로 호평받은 그는 브레히트 2탄 ‘억척가’를 올린다. 이자람은 대본, 창작, 연기, 음악감독을 맡는 동시에 1인 15역을 소화했다.

이자람은 작가로서 언어유희와 세태 풍자에 민감한 필치를 다시 한번 발휘한다. ‘억척가’에는 요즘 사용하는 물건의 이름이 불쑥 등장하고, 심지어 급할 때는 영어가 툭툭 튀어나오기도 한다. 예컨대 “억척 어멈의 달구지에는 ‘화살촉, 장화, 투구, 손전등, 술병, 논어책, 이어폰, 아이폰까지 있어야 할 건 다 있고 없을 건 없구나”, “지긋지긋한 내 팔자야 이놈의 이름을 바꿔보자. 수잔 제인 캘리 소피, 안되겠다. 내 더 이상 아이는 안 낳을 테니 안 낳아. 안나. 내 이름은 오늘부터 김안나로다!” 등 판소리의 고정관념을 깨는 톡톡 튀는 대사들이 등장한다.

음악도 판소리의 틀을 뛰어넘는 파격으로 가득하다. 인디밴드 한음파의 베이시스트인 장혁조와 타악연주자 김홍식, 이향하가 뭉쳐 깊이 있고 세련된 음악을 선사한다. 또 북, 장구, 꽹과리 등 한국의 전통 악기에 젬베, 준준 등 아프리카 타악기가 더해져 새로운 음악을 창조한다. 이달 19일까지. LG아트센터 

▶창작 발레 ‘홍등’=클래식의 대명사 발레도 다채롭게 진화중이다. 발레가 영화와 결합하고, 국악과 어우러진다. 오는 9월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개최되는 ‘2011세계국립극장페스티벌’에 초청된 중국 국립중앙발레단의 ‘홍등’은 대표적인 하이브리드 발레다.

‘홍등’은 장이머우 감독의 영화 ‘홍등(1992)’을 원작으로 한 창작 발레로, 2008년 국내 공연으로 선풍적 인기를 일으킨 바 있다. 서양 발레와 중국 영화를 결합한 파격으로 관심을 끌었다. 발레복 튀튀 대신 중국 전통의상 치파오를 입고 무용수들이 연기한다. 모던발레에 중국의 전통춤과 경극을 혼합한 새로운 발레 스타일로 화제가 됐다.

특히 영화 감독인 장이머우가 무대 연출을 맡아, 밀도 높은 시각 예술인 영화를 무대 위로 옮겼다. 장 감독 특유의 아름다운 미장센과 강렬한 색감이 발레와 어우러져 또 하나의 예술 장르를 탄생시켰다. 음악 역시 장르의 틀을 깼다. 발레 하면 떠오르는 서양의 클래식 음악에 경극을 결합해 파격의 음악을 들려준다.

국내 발레계도 기존 레퍼토리에서 벗어난 창작발레를 다양하게 구상 중이다. 국립발레단은 내년 초 ‘발레의 현대화’를 모토로 가야금 연주자 황병기 선생의 음악을 배경으로한 창작 발레를 선보인다. 국립발레단 관계자는 “발레 하면 클래식 음악만 떠올리는데, 우리 전통 음악을 배경으로 한 발레로 창의성을 더할 것”이라며 “황병기 선생의 음악을 공통분모로 안무를 공모해, 내년쯤 선보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미술+오페라 ‘아르츠 콘서트’, 뮤지컬+오페라 ‘세빌리아의 이발사’=음악과 미술이 결합된 ‘아르츠 콘서트’도 또 하나의 경계없는 예술을 보여준다. 오페라 아리아나 예술가곡, 뮤지컬 음악을 들려주는 콘서트와 미술 해설을 접목했다.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 중 ‘Addio, fiorito asil’을 명화 ‘일본여인’과 묶어 콘서트와 작품 해설을 들려준다.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와 마네의 ‘올랭피아’, 오페라 ‘오페라의 유령’과 ‘꿈의 꽃다발’ 등 유명 아리아와 미술 작품을 엮어 청각은 물론, 지적 자극을 동시에 전한다. 명화 해설은 미술해설가 윤운중 씨가 맡고, 소프라노 김수연, 테너 하만택, 뮤지컬배우 김소현이 출연한다. 21일 충무아트홀 대극장.

뮤지컬과 오페라를 합친 ‘뮤크페라’도 오페라의 또 다른 버전이다. 뮤크페라 ‘세빌리아의 이발사’는 오페라가 지루하고 어렵다는 편견을 깨고, 개그콘서트 못지않은 재미를 내세운 작품이다. 오페라 관람의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인 자막을 없애고, 한국어 대사로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다. 오페라는 물론 뮤지컬 연극 연출로 활약해온 박경일이 연출을 맡았다. 오픈런. OTM청담아트홀.

<조민선 기자@bonjod08> bonjod@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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