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테크의 허브, 지구촌 컬렉터들이 지갑을 여는 그곳
5월의 마지막 주, 홍콩에 아시아의 슈퍼 리치들이 몰려들고 있다. 거물급 부호를 태운 자가용 제트기가 잇따라 내려앉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비싼 미술품이 거래되는 스위스의 바젤아트페어(Art Basel) 기간에는 자가용 제트기 수백대가 한꺼번에 뜨고 내린다. 브래드 피트 같은 스타들도 매년 바젤을 찾는다.
그런데 이번엔 홍콩이다. 홍콩으로 아시아의 내로라하는 부자들이 운집하고 있다. ‘선라인’이라는 보험회사를 운영하며 지난해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쩡판즈의 회화 ‘마스크’(43억원)를 비롯해 매년 1600억~2500억원대의 미술품을 사들이는 중국 금융계 ‘큰손’ 류이첸(劉益慊) 부부, 장샤오강의 구작 ‘창세편’을 62억원에 구입한 인도네시아 부호 위더야오(余德耀) 등이 그들이다. 때마침 수억~수십억원대 미술품이 출품되는 초대형 아트페어와 경매가 동시다발로 개최되자 부호들의 발길이 홍콩으로 쏠리고 있다.
그간 이렇다 할 현대미술관도, 갤러리도 없어 ‘쇼핑과 음식의 도시’였던 홍콩이 ‘아트 재(財)테크 도시’로 급부상하고 있다. 세계적인 경매사 크리스티와 소더비가 홍콩서 대규모 미술경매를 개최하는 데다 5000여 점의 작품이 판매되는 홍콩아트페어( Art HK 2011)가 26~29일 열리기 때문이다.
홍콩아트페어의 경우 올해 8만~9만명 이상이 관람할 것으로 예측될 만큼 성황이다. 한국에서도 미술관계자 등 수백명이 이미 홍콩행 비행기에 올랐다. 아시아 아트마켓의 총아로 떠오르는 홍콩의 실상을 똑똑히 살피고, 해외 작품도 구입하기 위해서다.
더구나 홍콩아트페어의 경우 세계 최고 권위의 ‘아트 바젤’(Art Basel)과 ’아트 바젤 마이애미’를 보유 중인 MCH그룹이 최근 인수해 더 주목받고 있다.
올 들어 불과 4회째를 맞는 홍콩아트페어에는 38개국에서 260여개 화랑이 참여했다. 지난해 29개국 150개 화랑에 비해 비약적인 발전이다. 특히나 세계 아트마켓을 쥐락펴락하는 가고시안, 페이스, 말보로, 하우저&위르트, 화이트큐브, 마리안 굿맨 등 미국과 유럽의 유력 갤러리가 부스를 차렸다. 일급 갤러리가 ‘향후 돈이 될 만한 따끈따끈한 고가 작품’을 들고 홍콩을 찾으니 자연히 슈퍼리치들이 몰릴 수밖에 없다.
특히 앤디 워홀, 제프 쿤스, 무라카미 다카시 등을 휘하에 두고 있는 가고시안과 마크 로스코, 알렉산더 칼더, 장샤오강 등의 작품을 취급하는 페이스갤러리, 데미안 허스트를 전속으로 두고 있는 화이트큐브 등 다국적 갤러리가 자신들이 보유한 주요 작품을 일제히 쏟아냄에 따라 중국 대만 중동 인도 부호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예전 같으면 화랑이 ‘큰손’들을 설득하며 작품 구입을 강권하다시피 했으나 최근 몇 년 새 유명 미술품이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자 화랑들은 ‘자자, 줄을 서시오! 완불을 하시오’라며 떵떵거리고 있다. 스타작가 작품의 경우 ‘갑을 관계’가 바뀐 셈.
홍콩 크리스티의 ‘아시아 동시대미술 경매’ 현장. 홍콩은 물론, 중국 대만 일본서 몰려든 부호와 컬렉터들이 점 찍어둔 작품을 낙찰받기 위해 열띤 경합을 벌이고 있다. 글로벌 아트마켓이 회복세에 접어들며‘ 돈 될만한 작품’은 경쟁이 매우 치열하다. |
더구나 중국계 큰손들은 크리스티 홍콩의 아시아미술품 경매(27~28일)가 곧바로 이어져 주말 내내 홍콩에 머물 것으로 관측된다. 결국 홍콩은 스위스 바젤, 미국 뉴욕, 영국 런던에 이어 세계 4대 미술도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아시아 미술시장의 허브를 노리며 KIAF(한국국제아트페어)를 공들여 키워왔던 한국으로선 매우 다급하게 됐다.
홍콩시장이 이렇듯 급팽창하자 한국 화랑과 경매사들도 홍콩 공략에 팔을 걷어붙였다. 좁아터진 국내 시장만으론 한계가 있어 홍콩을 거점으로 아시아마켓 개척에 열을 올리고 있다.
(주)서울옥션과 K옥션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홍콩서 ‘빅 매치’를 벌인다. 28일에는 K옥션이 싱가포르, 일본, 중국 경매사와 함께 ‘유나이티드 아시안옥셔니어(UAA) 경매’를 연다. 30일에는 서울옥션이 홍콩의 유서 깊은 만다린오리엔탈호텔에서 미술품 75점을 경매한다. 서울옥션 경매에는 이우환, 위에민쥔, 야요이 쿠사마의 작품이 출품됐다.
그러나 무엇보다 관심을 모으는 것은 크리스티 경매. 지난 4월 경매를 열었던 소더비 홍콩에 이어 크리스티는 ‘아시아 현대미술 경매’를 28, 29일 개최한다. 한국 중국 일본 인도작품 343점이 나온다. 장샤오강의 유화 ‘대가족-아버지와 아들’(추정가 19억~27억원), 쩡판즈의 ‘가면’(7억~11억원)이 하이라이트에 해당된다.
한국 작품은 백남준의 ‘TV는 키치다’, 이우환의 ‘점으로부터’, 서도호의 ‘메탈 재킷’ 등 50점이 나온다.
통상적으로 크리스티, 소더비 같은 유력경매사의 출품작은 서너 차례 면밀한 검증작업을 거쳐 선정되기 때문에 작품 수준이 대체로 높은 편. 작품값이 누구에게나 투명하게 공개되는 것도 경매의 매력이다. 한국인들도 잔고증명(통장사본 제출)만 이뤄지면 국내에서도 서면 및 전화응찰로 홍콩 경매에 참여할 수 있다. 단 낙찰액에 따라 12~25%라는 높은 수수료가 붙고, 운송료도 응찰자 부담이니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크리스티 한국사무소 배혜경 소장은 “홍콩은 중국 본토와는 달리 미술품 관세가 없어 아시아 컬렉터에 인기가 높다. 글로벌 자본이 몰리며 지난해 크리스티는 홍콩에서만 54억6700만홍콩달러(7700억원)어치의 실적을 거뒀고 올해는 더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영란 선임기자/yr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