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마 빈 라덴은 죽었다. 그러나 알카에다는 죽지 않았다”
1일(이하 현지시각) 파키스탄에서 미군 특수부대에 사살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지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 전 세계에 테러 위협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고 있다. 9ㆍ11 테러의 원흉이 제거됐다는 낭보에 미국이 축제 분위기에 빠진 사이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은 혁명 영웅의 죽음을 “피로 응징하겠다”고 나섰다. “내가 죽는다면 무수한 추종자들이 내 길을 따를 것”이란 빈 라덴의 생전 발언이 보복 테러의 살을 입고 망령으로 되살아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미국 정부와 관련 전문가들도 이 같은 위험을 주지하고 있다. 빈 라덴 은신처 기습작전을 지휘했던 직접 진두 지휘했던 리언 파네타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2일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악명높은 테러리스트를 제거했다”면서도 “테러리스트들은 확실히 복수를 시도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도 1일 심야 특별성명을 통해 빈 라덴의 사망 소식을 발표하면서 “알카에다가 계속 우리를 향한 공격을 시도할 것이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이슬람 무장세력은 속속 보복을 다짐하고 있다. 특히 당초 수장의 사망소식을 부인했던 알카에다는 2일 공식 메시지를 전달하는 인터넷 사이트 ‘슈무크 알-이슬람’을 통해 “그는 영혼과 자금을 지닌 무자헤딘(이슬람 전사)였다”고 그의 사망을 인정하고 성전(聖戰)을 다짐했다. 보복 대상을 구체적으로 거론하는 단체도 등장했다. AP통신은 이날 소말리아의 이슬람 무장단체 알샤바브 대변인이 “미국과 이스라엘, 유럽 및 소말리아 기독교인들에게 보복을 가할 것”이라고 위협했다”고 보도했다.
빈 라덴이 사망 직전 자신의 메시지를 담은 테이프가 조만간 공개될 것이란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각에서는 이것이 이슬람 테러 집단의 결집을 유도, 보복 테러의 발화점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아랍권 위성 보도채널 알자지라는 미 군사 전문가 마크 키미트의 말을 인용해 “그의 죽음은 테러리즘의 한 장(章)이 끝났다는 것을 의미할지언정 테러리즘의 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경고했다.
조지타운대 대니얼 바이만 교수는 2일 “알카에다가 조직의 건재함을 과시하기 위해 보복 테러공격을 감행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하고 테러 대비에 집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이 잇따라 테러 위협을 경고하고 나서저 국제사회는 일제시 경계 강화 태세에 나섰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2일 “평화세력이 성공을 거뒀다”면서도 “국제 테러가 끝난 것은 아닌 만큼 경계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독일은 이날 자국민에 대한 여행 경보를 발령했다.
줄리아 길라드 호주 총리는 “알카에다는 여전히 위협적”이라면서 자국민들에 해외여행 시 각별한 주의를 당부했고, 일본도 미 대사관이나 주일미군 시설 등 테러의 가능성이 있는 시설의 경비 강화에 나섰다. 이날 유럽연합(EU)은 역내 치안 경계수위를 높여야 한다고 경고했고 인터폴(Interpol)도 각국 보안 당국에 경계수위를 높일 것을 촉구했다. 앞서 미국 정부는 미국 내 주요시설의 보안강화 및 재외공관 경계 강화를 지시하는 등 보안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편 보복 테러의 우려가 번지면서 시장은 ‘빈 라덴 사살’ 효과를 보지 못했다. 2일 빈 라덴의 사살 소식에 뉴욕 증시는 상승세로 시작했지만 테러 위협에 발목을 잡혀 0.02% 하락했고 유럽 주요지수도 강보합권에서 마무리 됐다. 외환시장에서는 달러 약세가 주춤했지만 강세 전환에는 실패했다. 오히려 장중 한때 유로에 대한 달러 가치는 16개월 래 최저로 떨어졌다. 금값 랠리도 계속됐다. 이날 뉴욕상업거래소에서 금 6월물 선물가격은 한때 온스당 1540달러 수준까지 하락했으나 테러 가능성으로 1557.10달러에 거래됐다.
유지현 기자/prodigy@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