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의 죽음은 중동 시위사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대다수 전문가들은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 벌어져 온 반정부 시위가 알-카에다의 의지와 상관 없이 자발적으로 진행돼 왔다는 점에서 빈 라덴의 죽음에 따른 직접적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전망했다.
빈 라덴과 알-카에다는 친(親) 서방 기조를 유지해 온 아랍권 독재자들을 ‘이단아’, ‘서방의 꼭두각시’라고 비난하며, 이슬람권 내 친미 정권의 붕괴를 궁극적인 목표 중 하나로 삼아 왔다. 이런 점 때문에 각국 당국은 반정부 시위를 강경진압하기 위한 구실을 찾는데 알-카에다를 악용하기도 했다.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는 지난 2월 반군의 트리폴리 진격이 임박했을당시 빈 라덴이 시위대를 조종하고 있는 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알-카에다라면 ‘이를 가는’ 서방 관리들조차도 신뢰하지 않을 정도로 근거가 떨어져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알-카에다 연계설 주장은 카다피가 자신의 추종세력 등을 결집시키고 반정부 세력을 강경 진압한 뒤 자신에게 다가올 비난을 무마할 명분을 축적하기 위한 포석으로 간주했다.
반정부 시위대가 독재·부패 정권을 전복시키기 위해 선택한 방식은 빈 라덴의 과격 무장투쟁과도 거리가 멀었다.
시위대는 평화적인 시위로도 얼마든지 철옹성 같았던 독재정권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점을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증명했다. 거리의 평범한 남녀의 외침은 알-카에다의 테러공격보다 독재세력에 훨씬 더 큰 타격을 가했다.
이 때문에 알-카에다는 튀니지와 이집트 시민혁명을 “미국이 새로운 친미정권을수립하는 과정”에 불과하다고 폄하하기도 했다.
마틴 인다이크 전(前) 주이스라엘 미국 대사는 로이터통신을 통해 “아랍권 거리의 시민들은 평화적이면서 비폭력적인 시위를 통해 그들의 존엄과 권리를 되찾았다”며 아랍 민중이 알-카에다의 투쟁 방식에 등을 돌린 상황에서 빈 라덴의 죽음은 오히려 알-카에다에 치명타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예멘에서는 빈 라덴의 죽음이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촉구하는 반정부 시위대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을 전망이다.
33년간 장기 집권 중인 살레 대통령은 알-카에다 세력 억제를 위한 서방의 대 테러리즘에 적극 협조해 왔다는 점 때문에 시위사태 정국에서도 서방의 암묵적인 비호를 받아왔다.
살레 대통령으로서는 빈 라덴 사살에 따라 서방에 대한 알-카에다의 보복 테러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을 구실 삼아, 현 정권의 존립 필요성을 서방에 다시 한 번 강조할 수 있는 기회를 맞이했다고 볼 수 있다.
2013년 임기 만료 예정인 살레 대통령은 지난 1일 “퇴진 후 처벌받지 않는다는 점을 보장받는 대신 30일 안에 퇴진한다”는 내용의 퇴진 합의안에 서명할 예정이었지만 돌연 입장을 바꿔 퇴진 여부를 놓고 다시 야권과 대치하고 있다.
예멘 시위대 또한 빈 라덴의 죽음을 살레 대통령이 악용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2일 시위현장에서 빈 라덴의 사진이나 관련 플래카드를 걸지 않도록 참가자들에게 신신당부했다.
아랍에미리트(UAE) ‘근동.걸프 군사 분석연구소’의 시어도어 카라시크는 “빈 라덴 사망과 관련, 예멘 내 알-카에다 세력이 공세를 강화할 가능성이 있다”며 “살레는 이런 상황을 정권 유지를 위한 당위성을 마련하는 데 이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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