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기모노'녀 미치코, 한국 비행기에서 김치 달랬더니..
# 일본인 미치코는 한국을 향해 날아오고 있다. 하늘길에 교통체증은 없지만 한국으로 가는 길은 지루하기만 하다. 눈 앞에 보이는 것은 한국을 알리는 관광책자다. 그림만으로도 호기심이 커지는 이 책자를 살펴보니 오색찬란한 한국음식들이 눈에 들어온다. 넓다란 철판에서 지글지글 끓어오르는 불고기, 노랑ㆍ초록ㆍ주황까지 다채로운 색들이 보는 것만으로도 호강이 되는 비빔밥은 꼭 한 번 맛보고 싶다. 매콤한 맛이 걱정스럽긴 하지만 한 번 맛을 들이면 잊을 수 없다는 김치도 먹어보고 싶다. 어쩐지 배도 고픈 것 같다. 긴 여행길이니 이제 한국을 맛볼 첫 번째 관문이 기다리고 있어 잠시의 배고픔을 참을 수 있다. 기내식에서는 분명 한국음식들을 맛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번엔 꼭 김치에도 도전해보고 싶다. 그러나 하늘길에서는 김치를 맛볼 수는 없었다.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의 다리가 되어주는 국내 항공사와 한국의 면면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얼굴 역할을 하는 특급호텔에 가보니 찾아볼 수 없는 것이 있다. 항공사의 기내식에서는 김치를 찾아볼 수 없고, 서울 시내 특1급 호텔들에서는 한식당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수많은 외국인 관광객은 한국을 알게 되는 첫 번째 관문인 하늘에서 한국을 기대하지만 그곳에서 한국은 찾을 수 없다. 두 번째 관문인 숙소에서도 전통적 한국을 충분히 알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역시나 기대는 실망으로 되돌아온다.

▶ 한국의 첫 관문...하늘길에 ’김치는 없다’=갖은 양념에 ’비타민의 보고’로 불리며 한민족의 식탁을 차지한 이것은 이미 수천년을 거슬러 가야할 역사를 지닌 우리 음식의 대표주자다. 그럼에도 땅 위에서라면 어디서곤 찾을 수 있는 김치를 하늘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다.

국내를 대표하는 항공사 대한항공이 그렇다. 이 항공사에서 내놓은 기내식을 살펴보니 비빔밥은 있을지언정 김치는 없다. 대한항공의 경우 김치를 대신해 오이지무침을 제공하기는 하지만 이 경우 외국계 항공사인 에어프랑스가 유럽 항공사 가운데는 최초로 김치를 한국발 기내식에 제공한 것과는 차별된다. 에미레이트 항공사에서도 김치, 된장국 등을 기내식으로 제공한다. 우리의 실상이 가장 우리다운 것을 꺼려할 때 외국에서는 우리를 겨냥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설령 국내 항공노선에서 김치를 찾는 외국인이 있다 해도 내놓을 것이 없는 형편이다.

국내항공사 기내식에 김치를 제공하지 않는 것에 대해 이용객들은 저마다 한 마디씩 한다. “김치를 내놓으면 냄새 때문에 외국인 이용객에게 피해를 주리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김치의 종류에는 새빨갛고 양념이 많은 김치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물김치와 백김치를 함께 제공할 생각은 왜 못하는지 모르겠다”, “오히려 나라밖에서는 기무치를 자기네 고유 음식으로 만들려는 노력이 한창이다. 충분히 방법은 있을 텐데 거기까지 생각은 미치지 않는 것 같다. 외국계 항공사가 하는 일을 왜 국내 항공사에서는 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는 것이 주된 반응이다.

▶ 특1급 호텔에선 한식당도 한복도 안된다= 서울 시내 특1급 18개 호텔을 찾아보니 중식, 양식, 일식당은 흔해도 한식당은 없었다. 겨우 4곳, 롯데호텔(무궁화), 워커힐 호텔(온달, 명월관), 르네상스 호텔(사비루), 메이필드 호텔(낙원, 봉래헌)뿐이었다.

애초부터 이런 상황이었던 것은 아니다. 한식은 조리과정도 까다롭고 재료비와 인건비가 만만치 않다. 해가 다르게 고객들의 발길이 끊기니 호텔에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됐다. 주요 호텔들은 하나둘 운영하던 한식당의 간판을 내렸다. 지난 1999년 밀레니엄서울힐튼의 한식당 ‘수라’를 시작으로 2005년 신라호텔의 한식당 ‘서라벌’, 웨스틴조선호텔의 ‘셔블’, 그랜드인터컨티넨탈 호텔의 '한가위' 등이 그랬다. 특급호텔에는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기치는 없다.

특히 호텔신라의 경우 1979년부터 운영되던 서라벌을 폐쇄한 것은 지난 2005년, 전통과 맞바꾼 신라의 서라벌 자리엔 중식당인 ‘팔선’, 일식당인 ‘아리아께’, 프랑스 식당인 ‘콘티넨탈’, 뷔페인 ‘더 파크뷰’ 등이 대신하고 있다. 한식당은 사라진 이곳 호텔신라의 뷔페식당에서는 심지어 한복을 입고선 식사를 할 수도 없다. 13일 거센 논란에 개운치 않은 사과만을 남긴 호텔신라와 한복 디자이너 이혜순 씨의 사건이 그렇다. 그럼에도 지난 2004년 자위대 창립 50주년 행사에서 기모노 차림의 여성들이 신라호텔 안을 버젓이 거닐었던 것은 이와 맞물려 공분을 살 만한 일이었다.

호텔신라의 ’더 파크뷰’가 한복 차림 손님의 입장을 저지한 이번 일은 14일(현지시각) 국제통신사인 AFP를 통해 “최고급 호텔 레스토랑에서 한복을 입지 못하게 했다”는 내용으로 보도됐다. ’자국의 문화를 스스로 배척한 자국 기업’이라는 맥락하에서였다. 실상이 그렇다. 아무리 입으로는 세계화를 말해도 이 곳에 한국은 없었다.

이제 ‘기무치’와 ‘김치’ 사이에서 배추로 만들어진 이 음식의 국적을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면 정답은 아주 가까운 데에 있다. 갖은 이유들로 밀어냈던 가장 한국적인 것을 실상에서 찾아가자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말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에서는 한국의 비빔밥을 세계에 알리자는 목적으로 30초 분량의 광고 영상을 제작해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 전광판에 1월 초까지 송출했다. 이 광고는 지난해 12월 말부터 1월 24일까지 한 달간 CNN 등 미국 주요 매체(ESPN, ESPN2, Food Network, Cooking Channel, TAN TV, KBFD TV 등)에 모두 273회 방송됐다. 드라마 ’대장금’은 단지 한국을 알리는 것뿐만이 아닌 매회 등장하는 다채로운 궁중음식을 통해 식문화까지 알리는 역할을 했다. 여러모로 한국을 알리는 것에 있어서는 세계1등 부럽지 않다. 이제는 매체를 통해 알렸던 노력이 실상에서 길어올려질 때다.

<고승희 기자 @seungheez> shee@heraldcorp.com

연재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