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부터 리비아 이집트 등 전세계적으로 분쟁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내전 및 폭력적인 범죄가 성장률이나 무역규모를 떨어뜨리는 등 경제발전에 큰 걸림돌이 된다는 분석이 나왔다. 내전을 겪으면 성장률이 2~3%가 줄어들고 교역량의 경우 분쟁이전 수준까지 회복하는 데 20년 넘게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은행(WB)은 11일 발표한 ‘2011 세계발전보고서’를 통해 내전 및 폭력적 범죄가 해당 국가의 경제발전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세계은행이 연례 보고서를 통해 지역사회 갈등과 안보문제를 주요의제로 다룬 것은 이례적인 일로 전세계 분쟁이 지역 경제발전과 밀접한 연관성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대응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보고서는 아프리카의 두 국가인 부룬디와 부르키나파소의 경우를 예로 들었다. 1990년대 초반만 해도 두나라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50달러 내외로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극심한 내전을 겪은 부룬디는 2005년 1인당 GDP가 100달러 내외로 추락한 반면 부르키나파소는 꾸준한 성장율을 유지, 2005년 1인당 GDP 250달러를 돌파했다. 15년 사이 소득격차가 2.5배나 벌어진 셈이다. 전 세계적으로 분쟁을 겪은 지역이 그렇지 않은 지역에 비해 빈곤율(총 인구 중 하루 1.25달러 미만으로 생활하는 인구 비율)이 1.5배 높다는 보고도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교역량의 경우 분쟁이 발생한 첫해에 12~25%가량이 감소하고 사망자가 5만명 이상 발생한 심각한 내전을 치른 경우엔 교역량이 40%까지 줄었다. 이러한 교역량 변화는 분쟁 시작 후 25년간 지속되며, 덜 심각한 분쟁을 겪은 경우에도 교역량을 분쟁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려면 평균 20년이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연 평균 GDP 2~3%의 감소로 나타난다. 비단 분쟁 국가뿐 아니라 인근 국가들도 GDP가 연평균 0.7% 감소하는 연쇄효과가 일어난다. 이와 관련 세계은행은 올해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의 경제성장률이 4.3% 선에 머물 것으로 예측했다. 이집트와 튀니지 등 시위의 직격탄을 맞은 국가들의 경제성장률은 3% 정도 영향을 받고, 이 지역 전체의 경제성장률에는 2.4% 타격이 있을 것이란 분석에 따른 수치다.
내전뿐 아니라 최근 증가하고 있는 테러 문제도 경제성장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보고서는 인구 100만명 당 테러 건수가 한 건 증가할 때마다 경제성장률이 0.4% 줄어든다고 분석했다. 분쟁 지역의 경제발전이 심각하게 둔화되는 이유에는 국ㆍ내외 투자자들의 신뢰가 급속도로 하락하는 것을 꼽을 수 있다. 미국의 리스크 분석기관인 PRS그룹의 국제국가위험지수(ICRGㆍInternational Country Risk Guide)에 따르면, 분쟁 국가의 신용지수는 전체 100을 기준으로 평균 7.7포인트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분쟁 국가가 분쟁 이전 수준으로 경제성장을 회복하는 데는 평화가 유지된 상태에서 평균 14년이 소요된다고 분석했다.
정치적 안정 하에 상대적으로 높은 성장률을 구가하는 한국의 경우 이 같은 보고서 내용은 남의 나라 얘기로 들릴 지 모른다. 그러나 오늘날 글로벌화로 서로 얽히고 섥힌 세계경제는 ‘나비효과’가 구현되는 실험의 장이다. 소말리아의 기아상태를 방치한 결과가 오늘날 인도양에 출몰하는 해적으로 나타났다. 인질 몸값과 보험, 선적 수송비 등을 포함해 전 세계는 매해 57~112억 달러의 비용을 지출하고 있다. 세계은행의 이번 보고서는 내전과 폭력이 세계경제 전체에 파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강 건너 불 구경하듯 해서는 안 된다고 역설하고 있다. 구제금융과 글로벌 경기침체에서 막 회복을 시작해 ‘성장’에 목마른 각 국이 이번 보고서를 귀담아 들어야 하는 이유다.
유지현 기자/prodigy@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