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계열사 3곳이 국세청 세무조사를 받으면서 당사자인 삼성은 물론 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국세청과 삼성은 똑같이 “정기 세무조사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는 하지만 강도의 세기가 심상치 않아 보인다.
특히 삼성 계열사의 동시다발적인 세무조사가 이건희 회장의 3월초 ‘낙제점’ 발언 후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지난 1995년 이 회장의 ‘베이징 발언’ 직후 행해졌던 삼성 대상의 고강도 세무조사와 유사한 흐름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에 업계 일각에선 동반성장과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 규제, 유가 인하 압박에 이은 정부의 사정당국을 동원한 파상적인 ‘기업 옥죄기’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을 내놓으면서 사정(司正) 바람이 타기업으로 까지 확산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실제 삼성 계열사에 대한 세무조사 강도는 예전과 달라 보인다. 일단 삼성중공업과 호텔신라가 4일 동시에 세무조사에 돌입한 것이 뜻밖이다. 삼성중공업 세무조사를 세적지(稅籍地)인 부산지방국세청이 아닌 서울지방국세청이 담당하고 있는 것도 의외다. 중공업 세무조사 기간이 105일로, 통상 조사기간(2개월)을 훨씬 넘게 통보된 것도 예사롭지 않다. 들여다 볼 것이 그 만큼 많다는 방증이다.
국세청은 올해 해외에서의 기업 탈세조사를 역점적으로 추진하고 있어 이와 관련한 갖은 추측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조세정의 실현을 내세우고 있는 상황에서 경영권 승계 후보자들을 중점 관리하겠다는 신호탄으로 해석하는 이들도 있다. 이에 국세청이 삼성 주변(중공업 등)을 건드린 뒤 중심(삼성전자)으로 치고 들어갈 것이라는 시각마저 대두된다.
삼성의 입장은 단호하다. “정기 세무조사로, 확대해석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삼성 고위관계자는 “계열사가 70여곳이 되는데, 4~5년씩을 돌아가면서 해도 특정기간에 3~4곳이 동시에 세무조사를 받는 건 이상할 것 없다”고 말했다. 그룹 관계자 역시 “(세무조사와 관련해)특별한 긴장감은 없으며 성실히 조사에 임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하지만 업계나 정부 일각에선 삼성 계열사의 동시다발적 세무조사를 이 회장의 ‘낙제점’ 발언과 연관짓고 있다. “어떻게,누구 덕분에 큰 삼성인데 이럴 수 있나”라며 분개했던 청와대의 기류와 무관치 않고, 청와대의 이런 섭섭함이 사정당국에 고스란히 전달됐다는 것이다.
설득력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어 보인다. 이 회장은 95년 중국 베이징에서 특파원 간담회에서 “한국의 정치는 4류, 행정과 관료는 3류, 기업은 2류”라고 말한 바 있다. 이에 김영삼정부의 미움을 샀고, 급기야 고강도 세무조사가 이어져 상당기간 곤욕을 치렀다. 업계 일각에서 ‘95년 데자뷔’라고 까지 말하는 배경이다.
전경련 관계자는 “삼성 세무조사는 최근 계열사 일감몰아주기 규제나 비상장 계열사의 오너 일가에 대한 과도한 배당 논란이 일고 있는 시점에서의 정부 압박과 장기적인 표심(票心) 의식과 무관치 않다고 본다”며 “만약 정부가 의도를 갖고 사정당국을 동원한다면 이는 간과할 수 없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다만 현재까지는 정기 세무조사라는 데 무게가 실린다. 지난해 삼성증권과 삼성화재 등이 정기 세무조사를 받았었고, 이번 계열사 세무조사 역시 통상적 조사를 담당하는 서울국세청 조사 1ㆍ2국이 진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과한 해석엔 무리가 따른다는 것이다.
결국 사정당국의 이번 세무조사 강도의 세기, 그리고 또다른 계열사로의 전이 여부가 ’삼성그룹 정조준설’의 키를 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영상 기자 @yscafez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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