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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칼럼-조진래 산업부장 ] ‘정주영 회장의 현대家’화해가 아쉽다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의 신화는 숱하다. 그 가운데 백미는 아마도 조선업에 뛰어들어 만들어낸 성공신화일 듯싶다. 거북선과 이순신 장군이 그려진 500원짜리 한 장으로 해외투자를 이끌어낸 것부터, 조선소 도크 건설과 선박 건조를 동시에 병행하는 기상천외한 얘기까지 경이롭기까지 하다.
극적인 것은 때마침 터진 중동의 오일쇼크였다. 전 세계 수요가 줄면서 유조선이 남아돌게 됐고, 급기야 건조 중인 3척이 계약 취소되는 사태를 맞았다. 당연히 자금난에 선박건조 중단 의견이 들끓었다. 그러나 정 명예회장은 달랐다. “이왕 만든 배, 이걸로 새 사업을 해보자”는 역발상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게 해운사업이고 그 결과가 지금 현대그룹의 모태인 현대상선이다. 절박한 위기를 헤치고 만든 회사였기에 생전 정 명예회장도 상당한 애착을 가졌음직하다.
지난 21일은 정 명예회장의 10주기였다. 이런저런 행사 중 세인의 관심은 아무래도 현대건설 인수전으로 뒤틀린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간의 화해 성사 여부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아쉽게도 성사됐다는 소식은 전해오지 않고 않다. 10주기 추모 기간 중 현장 분위기 탓에 엉겁결에 제수씨(현 회장) 손을 잡기는 했지만, 정 회장은 “허허… 제수씨와 악수는 무슨…” 하며 어색해했다. “현대그룹의 경영권에 영향을 미치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고 회장이 공언했건만, “예 감사합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잘해 보겠습니다” 하는 답이 없어 현대차 측은 불만이다. 계속 지분 문제를 걸고넘어지니 “이게 무슨 ‘화해’냐. ‘거래’하자는 것이지” 하며 기분 상해 한다.
반면에 다 잡았던 현대건설을 빼앗긴 현대그룹 측에선 이참에 뭔가 확실한 다짐을 받아야겠다는 입장이다. “아직 현대차 측에서 (화해)제안이 안 왔다”며 시아주버니의 통 큰 아량을 기다리고 있다. 현 회장에게 ‘화해’란 현대건설의 현대상선 지분을 현대 측에 돌려줘야만(?) 종결되는 일이다. 유상증자로 안정적인 방어 지분을 확보하긴 했지만, 시아주버니들의 혹시나 모를 공격 가능성을 늘 걱정스러워한다.
현대가는 남달리 형제가 많다. 그러나 적어도 정주영 명예회장이 정치권에 출사표를 던지기 전까지는 큰 분란이 없었다. 맏형의 카리스마가 남달랐던 영향도 있지만, 지난 2007년 작고한 변중석 여사의 2대에 걸친 헌신과 가족애 교육이 크게 작용했다고 한다.
때문에 현 회장의 남편인 정몽헌 회장이 스스로 계동 집무실에서 세상을 등졌을 때, 누구보다 먼저 현장으로 달려온 사람이 형 정몽구 회장이었다. 후계 자리를 놓고, 사업 주도권을 싸고 갈등을 겪고 다투기는 했지만 역시 피를 나눈 형제애를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이제 누구랄 것 없이, 서로 상대의 손을 먼저 잡아주었으면 한다. 힘을 모아도 힘든 판에 서로 싸우는 모습은 국민들이 보기에도 민망하다. 이 정도면 됐다. “제수씨 아무 걱정 말고 경영 잘해 보세요”, “예 시아주버님, 감사하고 열심히 해보겠어요” 하는 대화가 아쉽다.
세계 시장에서 ‘현대’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감은 남다르다. 같은 ‘현대’라는 이름으로 형제 기업들이 힘을 모아 세계를 제패하는 모습, 그것이 정 명예회장이나 변 여사가 원했던 마지막 소원은 아니었을까. 지금 어디에선가 정-현 두 회장이 화해와 선의 경쟁의 악수를 나누는 과정이 진행되고 있기를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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