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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가수다’, 일단 성공했다
- 최고의 가수 모아놓고 독하게 나가는 이유

MBC ‘일밤-나는 가수다’의 첫 회가 시청률로는 부분 성공했고 노이즈로는 대성공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창력이 뛰어나다는 가수 7명을 한 무대에 올려놓고 노래를 들을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는 자체로도 큰 반응을 낳았다. 7명의 가수가 한명씩 노래를 부르는 도중 이들과 매니저 계약을 맺게 된 개그맨을 보여주고 인터뷰 장면을 끼워넣은 편집에 대해 큰 불만이 나온 건 대중이 이들의 노래에 더 집중하고 싶다는 걸 말해준다. 현장에서 라이브로 들었던 500명의 일반인 판정단들은 모두 감동했다는 느낌을 전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나는 가수다’에 대해 윤종신은 “가혹한 기획이라 생각했는데~”라고 예측했고, 조영남은 아예 “못돼먹은 프로그램”이라 말했다. 경쟁 프로그램 ‘1박2일’ 나영석 PD로부터는 “잘 될 것 같다”는 반응이 나왔다. ‘나는 가수다’가 오디션 프로그램 ‘위대한 탄생’의 기성 가수 버전 형태를 취하면서 독하게(?) 나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런 포맷을 취하지 않고서는 이들을 주말 저녁에 노래할 수 있도록 모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시간대에는 버라이어티 예능이건 음악 프로그램이건 아이돌과 비주얼이 되는 젊은 가수와 예능인들이 모조리 점령했다. 이소라, 정엽, 백지영, 김범수, 윤도현, 박정현, 김건모는 이제 겨우 1~2개 남은 심야 시간대 라이브 음악쇼 같은 곳에 간간이 얼굴을 내비칠 뿐이다. 그래서 이들을 함께 출연시키기 위해 비상조치를 취한 것이다.

이건 지상파 방송국이 비주얼 위주의 어린 가수 위주로 음악 프로그램에 출연시켜다 보니 자초한 현상이기도 하고, “등수를 매겨 ‘아메리칸 아이돌’ 흉내 내 여기까지 온 것이다”(조영남)라고 하는 것 처럼 그런 식으로 되어가는 세태를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박성광은 “정말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고 말하지 않았나.

그런 점에서 ‘나는 가수다’의 포맷은 다양한 개성과 재주를 지닌 기성가수들을 수직으로 서열화한다는 우려보다는 오히려 기대와 긴장과 관심을 상승시키려는 장치로 봐야 할 것이다.노래를 잘 부른다는 것만으로 대중들이 열광하는 시대는 아니다. 우선 대중과 함께 할 기회부터 잡아야 한다. 90년대 음반을 100만장 이상 팔아치우며 노래 잘 부른다는 소리를 듣던 가수도 2010년대 팬 확보는 새로운 과제다. 지금과 같은 음악환경에서는 김건모 뿐만 아니라 조성모, 김현정 같은 가수도 음악 프로그램 출연이 여의치 않다. 이문세 이승철 신승훈 바비킴 이적 김동률 처럼 공연으로라도 대중과 소통할 수 있다면 다행이다.

그런 상황에서 김현정이 왜 조금씩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로 가는지 이해가 간다. 조성모와 김현정만 해도 요즘 세대에게는 노래는 잘 부른다고는 느끼겠지만, 이들에겐 ‘스토리’가 없다. 이 가수들을 대중들이 큰 화제로 삼기 힘든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가수다’에 출연한 7명의 가수들은 모두 노래만으로 대중의 마음을 움직일만한 가창력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뭔가 허전하다. ‘열린 음악회’ 정도의 열린 분위기만으로 주말 버라이어티의 치열한 경쟁을 통과할 수는 없다.

이들은 서바이벌 게임 형식을 통해, 인터뷰나 미션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이들에게 스토리와 캐릭터가 생기고 인간적인 면모가 부각되기도 할 것이다. 스토리와 진정성을 자연스럽게 전달시키되 식상하지 않도록 하는 구성은 ‘나는 가수다’를 지속가능한 프로그램으로 만드는 관건이다.

벌써부터 이들이 보통 무대에서와는 다르게 긴장하고 초심을 찾으려고 노력하며 노래하는 모습은 동료 선후배가수들로부터도 “진심이 전달되는 느낌을 받았다” “감동이다” “소름 돋는다” 는 반응을 얻고 있다.

하지만 노래 잘 부른다는 가수들이 윤도현을 제외하면 대부분 발라드나, 댄스음악과 발라드를 섞어 부르는 가수들로 한정됐다는 건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지상파 음악프로그램이 춤과 노래, 비주얼 등 아이돌 위주의 엔터테이너형 가수들로 범람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는 가수다’가 자칫 발라드 잘 부르는 가수의 집합소가 되어서는 안된다. 가창력의 멀티화를 시도했으면 한다.

대중문화에서 한 장르로 쏠리는 현상은 필연적으로 문제를 낳기 마련이다. 이런 점들을 보강해나간다면 ‘나는 가수다’가 노래 잘하는 가수들이 음악과 진정성을 보여주는 무대로 안착할 수 있다.

서병기 대중문화전문기자/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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