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팔순맞은 ‘분단문학 작가’ 이호철씨
“올해가 팔순인데, 문인간첩단사건으로 감옥에 간 게 1974년이거든. 36년전 일인데 꼭 어제 일 같단 말이야. 나이 들었다는 게, 참 세월이….”우리 문단의 최고령 현역작가인 이호철 씨가 새 소설집 ‘가는 세월과 흐르는 사람들’(글누림)을 내면서 3일 인사동에서 기자들과 만났다. 본의아니게 옌볜, 중국, 러시아 등 남의 땅에 남아있지만 같은 세월, 시간을 살아온 동포들의 얘기다. 몇 해 전 KBS 국제방송 라디오 프로그램인 ‘보고 싶은 얼굴 그리운 목소리’에 해외동포들이 보내온 사연을 바탕으로 작가가 얘기를 보탠 것이다. 오히려 이 땅에선 잊혀지고 사라진 할아버지, 할머니의 생활과 마음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그들을 통해 그가 정말 하고 싶었던 얘길 담아냈다. 기존의 허구 소설과 좀 다르지만 그에겐 현실이 곧 소설인 셈이다
“소설이라는 게 별건가. 사람 사는 얘기가 소설이지.”
분단작가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붙는 것도 그의 삶과 맥을 같이한다. 1932년 함경남도 원산 태생으로 해방 후 북한체제를 경험하고 고3 때 인민군 병사로 한국전쟁에 동원됐다가 탈출한 그의 삶은 퍼내도 여전히 고이는 문학의 원천으로 작용했다. 그의 많은 작품들이 그 원체험을 나누고 있으며, 특히 40년대 북쪽의 삶의 표정들을 담아낸 ‘남녘사람 북녘사람’은 현재 10개국에 번역 출판돼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그의 문학의 특징은 ‘삶이 곧 문학’이라는 데 있다. “현장의 삶과 밀착한 데서 나오는, 삶에서 나오는 육성이야말로 문학의 본령이다”며 그는 문학 고유의 희소가치를 강조했다.
몇 년 전부터 고양시 덕양구 선유리에 작업실을 마련해놓고 독회활동을 하고 있는 그는 작업실을 ‘이호철문학관’으로 바꾸는 작업을 현재 진행 중이다. 살아 있는 문학관으로, 문학이 앞장서 어떻게 사는 게 제대로 사는 건지 삶의 질을 생각하고 모색하는 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문단의 산 증인으로서 그는 다양한 일화도 들려줬다.
특히 미당과의 첫 키스는 압권. “언젠가 술자리 뒤 미당과 대면했는데 ‘산중문답’ 같은 긴 시를 몇 편 줄줄 외웠더니 미당이 ‘이제 너는 내 아들이다’며 나를 껴안더니 입을 맞추는데 혀가 쑥 들어오더라고. 그게 내 첫키스였어.”
오는 11일에는 세종문화회관에서 팔순 기념식을 갖는다. 최일남·한말숙·이어령·문덕수·신봉승·한승헌·김승옥·정수일 씨 등 선후배 문인과 지인 87명이 글을 모아 만든 기념문집 출간기념회를 겸해 최근 발족한 ‘이호철문학재단’이 공식출범한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