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과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3·1절 기념식장에서 나눈 대화의 해석이 분분하다. 이날 이 대통령은 “언제 한번 봐요”라고 말했고, 손 대표는 “네”라고 답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가 사실상 여야 영수회담 제안으로 봐야 한다는 게 정치권의 시각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도 “(정치권이) 알아서 판단할 일”이라며 부인하지 않아 ‘영수회담 제안’론에 무게를 더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의례적인 인사로 영수회담 제의로 보기는 어렵다”며 반응이 부정적이다.
대통령이 야당 대표와 공식적으로 만나려면 절차가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공연히 변죽만 울릴 게 아니라 청와대는 차제에 정식으로 손 대표에게 영수회담을 제의하고, 손 대표는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 당장 내일이라도 두 사람이 만나 머리를 맞대고 난마처럼 얽힌 정국 현안을 논의하고 정치적 용단을 내려야 한다. 우선 동남권 신공항 건설과 과학벨트 조성을 둘러싼 갈등이 끝이 없다. 오죽하면 ‘원점’에서 다시 생각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할 정도다.
종교계 개입으로 무산 위기에 놓인 이슬람채권법(수쿠크)을 경제 논리로 풀어내는 일도 시급하다. 민생 현안은 또 어떤가. 폭등하는 물가에 전세대란, 구제역 파동과 2차 환경 피해 등 정치권이 나서야 할 일이 태산이다. 어렵고 힘든 상황을 지혜롭게 헤쳐나가고 국민들을 위로하는 것은 정치권의 기본 책무다. 그런 점에서 이 대통령과 손 대표 모두 직무유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다행히 민주당 내의 비판적 반응과는 달리 손 대표 측은 영수회담에 유연한 입장이라고 한다. 의제가 조율된다면 굳이 피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더욱이 손 대표가 이 대통령과 국정 현안을 허심탄회하게 논의하는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인다면 내년 대선을 겨냥, 야권 지도자 입지를 강화하는 데도 한결 도움이 될 것이다. 국회도 이제 정상화된 마당에 손 대표가 영수회담을 거부할 명분은 없다.
문제는 이 대통령이다. 정치권, 특히 야당과의 소통에 더욱 적극적이어야 한다. 이 대통령 재임 3년 동안 야당 지도자와 만난 것은 단 한 번뿐이었다. 그나마 임기 초반이었고, 대통령과 야당 대표 사이에 대화가 끊긴 지 2년 반이 지났다. 도대체 소통부재로 어떻게 정치를 하겠다는 것인지 의문이다. 제1야당 대표는 국정운영의 최우선 동반자다. 이를 제대로 인식해야 정치적으로도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있음을 임기 후반기에 들어선 MB는 명심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