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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폴 오스터의 신작 '보이지 않는'
젊은 문학도 앞에 나타난 기묘한 만남

'일어날 수 없는 일이지만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 눈을 감아야 보이는 이야기. 잊으려 하면 더 또렷해지는 이야기. '


폴 오스터의 <보이지 않는>( 열린책들. 2011)은 미로를 지나온 느낌을 주는 소설이다. 살다보면 한번쯤 닥치는 기묘한 미로다. 복잡하든 그렇지 않든, 누구나 그 미로 속에서 방황하며 헤멘다.


베트남전 반대 운동이 한창이던 1967년 봄, 소설의 주인공인 대학생 워커는 우연히 한 프랑스인 커플 ‘보른’과 ‘마고’를 만나면서 꿈같은 사건 속으로 빠져든다. 소설은 도입부에 위험한 남자 보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나는 시를 많이 읽고 있었음으로 그와 똑같은 이름을 단테의 <신곡>의 ‘지옥’ 편에서 만난 적이 있었다.‘


반면 보른의 여자 친구 마고는 매혹적이다. 주인공은 보른이 아파트를 비운 사이 마고와 사랑을 나눈다.


‘나는 그 만남이 끝나지 않기를 바랐다. 그 기이한 천국에서 역시 기이하고 속을 알 수 없는 마고와 함께 산다는 것은 내 생애에서 가장 멋지고 가장 기이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해할 수 없는 마고와의 이별과 또 다른 충격적인 사건이 주인공을 혼란속으로 밀어넣는다. 우연히 골목에서 한 총을 든 한 강도 소년의 위협을 받게 되는데, 보른이 칼로 소년을 찔러 죽여 버린다. 알고 보니 소년이 든 총은 총알이 없었다. 주인공은 보른으로부터 사건을 함구하라는 협박을 받는다.


미래의 꿈과 현실 속의 징병 사이, 시대적 상황 속에서 고뇌하는 한 문학도에게 던져진 이 사건은 삶의 행로를 바꾼다.


이어 ‘여름’ 그리고 ‘가을’ 편이 펼쳐진다. ‘여름’ 편에선 ‘근친 상간’과 관련된, 더 충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소설의 구조는 이처럼 셋으로 되어 있다. 소설은 예순 살이 된 주인공의 회고록 형식이다. 특이한 점은 봄, 여름, 가을이 각각 1, 2, 3인칭 시점으로 다르다는 점. 이는 이 소설의 제목, 나아가 메시지와 맞닿아있다.


‘나 자신을 1인칭으로 서술함으로써, 나는 나 자신을 질식시켰고, ’보이지 않는‘ 존재로 만들었다. 그리하여 내가 찾고 있던 것을 찾는 게 불가능해졌다. 나를 나 자신으로부터 떨어트릴 필요가 있었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나 자신과 나의 주제(바로 나 자신) 사이에 약간의 공간을 두는 것이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그‘가 되었다. (본문 중)


‘나’를 객관화함으로써 나를 정확히 볼 수 있다. 작가는 독자로 하여금 존재 확인에 대한 새로운 형식과 실험을 제시하고 있는 셈이다. 이와 관련 보른의 다음과 같은 대사는 의미심장하다. (소년 강도의 일을 회상하면서)


나는 자네 목숨을 구했다고, 애덤. 잘 기억해 둬. 만약 총이 장전되어 있었다면, 자넨 내 행동에 감사했을 거야. 권총에 총알이 없었다는 사실은 실제 상황의 그 어떤 것도 변화시킬 수 없어. 안 그래? 우리가 장전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한 총은 장전된 거라고. (본문 중)


소설은 계속될수록 비현실적인 상황과 난감한 묘사로 이어지지만 읽는 묘미를 줄이지는 못한다. 폴 오스터의 매혹적인 이야기 전개와 섬세하고 감성적인 문체 덕이다.


젊은 날의 꿈과 욕망, 폭력과 상처, 사랑과 애욕이 각각 그 표상인 워커와 보른 그리고 마고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 소설은 방황하는 청춘의 특이한 자화상일 뿐 본질에선 같다. 그 점으로 인해 한 번 읽으면 쉽게 잊기 힘든 소설이 된다.

 

[북데일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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