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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성’ 계열사만 2800여개?…이름 도용업체에 고객ㆍ기업은 괴롭다
#1=최근 혹한 속에 보일러업체 A사는 고객 항의에 시달리고 있다. 자사 상호로 등록하고 공식 서비스센터인 것처럼 AS신청을 받은 후 부실수리를 하거나 폭리를 취하는 등 소비자에게 피해를 주는 사설업체들 때문이다. 전화번호부상 서울시에 A사 상호로 1500개 이상의 업체가 등록돼 있지만 실제 A사 서비스센터는 40여 곳에 불과하다.

#2=B 씨는 지역 생활정보지에서 ‘LG캐피탈’이라는 업체 광고를 보고 LG그룹 관계사라고 생각해 전화로 대출상담을 받았다. 개인신용정보를 제공하고 수수료를 선지급했지만 이후 해당회사와 연락이 두절됐다. LG그룹은 캐피탈사업을 하지 않는다.

#3=종합상사 C사는 몇 년전 사명을 변경했는데 얼마 후 과거의 사명을 사용하는 업체가 등장했다. 이 업체가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등을 이용해 고객을 모집하면서 C사로 문의전화가 쇄도해 한동안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었다.

이처럼 상호등록제도의 허점 때문에 기업과 소비자의 피해가 잇따르자 재계가 제도개선을 촉구하고 나섰다.

대한상공회의소(회장 손경식)는 30일 ‘동일ㆍ유사상호로 인한 피해실태와 정책개선과제’ 보고서를 통해 현행법상 법인설립 혹은 사업자등록시 상호의 등록ㆍ사용에 대한 별다른 제한이 없어 유명기업의 상호를 딴 업체들이 난립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삼성○○○○, LG○○○○ 등의 식으로 대기업 이름을 도용, 고객들을 현혹하는 것이다.

실제 대한상의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유명 대기업 명칭이 포함된 상호를 등록하고 영업하는 업체는 ‘삼성’ 2799건, ‘현대’ 3949건, ‘엘지’ 505건, ‘에스케이’ 1115건 등에 달한다.

대한상의는 이처럼 동일ㆍ유사상호의 사용이 만연하게 된 데에는 상업등기법상 동일지역(특별시, 광역시, 시, 군)에서 동일업종이면서 동일상호인 경우만 아니면 상호등록을 자유롭게 허용하고 있는 제도 때문인 것으로 분석했다. (현행법상 지방에 본사가 있는 대기업과 같은 상호의 법인을 서울에 설립하는 것이 가능하다)

특히 법인이 아닌 개인사업자의 경우 등기소에 상호를 등록하는 절차를 거치지 않고 임의의 상호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삼성택배, LG익스프레스, 현대유리 등의 경우 전화번호부에 등록된 상호만 해도 각각 125건, 196건, 188건에 달한다. 물론 대부분 대기업과 무관한 사설 개인사업체들이다.

이러한 점 때문에 동일ㆍ유사상호 업체들을 대기업 계열사로 오인하고 거래했다 피해를 입은 소비자가 해당 대기업에 항의하고 보상을 요구하면서 기업 관계자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기업으로서는 동일ㆍ유사상호로 인한 피해를 예방할 방법이 없다는 게 문제다. 사후적으로 상대 업체에 상호사용 금지를 요청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며 상대의 불응으로 어렵고 복잡한 소송절차를 거치고 시간과 비용상 부담을 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실제로 최근 포스코와 LG, KT 등은 유사상호를 사용하는 포스코에너지, LGDㆍLGT, KT로지스 등을 상대로 상호사용금지 청구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승소하더라도 유사상호 등록이 합법적으로 허용되고 있는 현실에서는 또다른 업체에 의해 동일한 피해가 재발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대한상의는 보고서에서 동일ㆍ유사상호로 인한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상호등록과 관련한 최소한의 사전심사장치를 마련해줄 것을 제안했다.

즉 ▲기업피해가 예상되는 동일ㆍ유사상호를 판별할 구체적인 심사기준을 마련할 것 ▲자사상호의 타법인 등록제한을 희망하는 기업들의 신청을 접수받은 후 적격성이 인정되는 상호에 대해서는 타사의 상호등록을 제한할 것 ▲개인사업자에 대해서도 법인 상호등록심사에 준하는 심사제도를 운영할 것 등을 주장했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상호등록제도의 허점 때문에 지명도 높은 기업인 양 선의의 소비자와 거래업체를 현혹시키고 피해를 주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며 “소비자들의 각별한 주의와 함께 정부에서도 동일ㆍ유사상호로 인한 피해를 예방할 수 있는 보완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영상 기자 @yscafezz>

ys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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